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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Apr 29. 2019

단기전, 장기전

당장의 생계냐, 앞으로의 생계냐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다. 유능한 사람도 되고 싶고 유명한 사람도 되고 싶다. 성적도 잘 받았으면 좋겠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공부는 하기 싫지만.


스타트업은 설립 초기에 제품이 없고, 그래서 수익이 아직 발생하지 않는 기간에도 버티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초기에 성과를 취하기보다는 성과가 열리도록 하는 뿌리와 줄기를 세우는 일을 하고자 노력한다. 굶어죽기 전에 자체 수익모델을 내놓고 열매가 열리는 단계에 이르면 생존하는 것이고, 그러기 전에 자본이 떨어지면 회사가 망한다. 어떤 경우에는 굶기보다 다른 회사로부터 외주 일을 위탁받는 하청업체가 되는데, 그러면 당장의 생존은 해결되지만 장기적으로 자체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당장 굶기를 감수하고 자체 수익모델을 완성하느냐,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고 단발성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다. 

성과를 획득하는데 아예 관심이 없는 개인도 있고
성과를 획득하려고 성과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개인도 있고
더 큰 성과를 획득하려고 성과 그 자체에 단체로 덤비는사람들(=하청업체)도 있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나 조직은 성과가 자연히 열리도록 뿌리와 줄기를 먼저 세운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얻다 보면 자기 색깔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낮은 수준의 열매를 다 획득한 다음에는 그보다 높은 수준의 열매를 획득할 능력이 없어 장기적으로 생존이 위협받는다. 한편 장기적인 성과를 너무 추구하다 보면 당장에 밥을 굶는 일이 생긴다.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는 꼭 어느 쪽을 따라야 한다는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때그때 균형을 맞춰야 하는 문제다.


회사가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공부를 해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당장의 시험 성적이 잘 나와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과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것보다 답을 맞추는게 우선시된다. 그렇게 공부해 성적을 잘 받더라도 그 이후에는 내용을 전부 잊고 또다른 시험을 보며 성적 받기를 반복한다. 하청업체로 살아가는 단기적인 공부다. 


당장의 성적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깊은 뿌리와 줄기를 세우는 공부도 있다. 취미생활로 수년간 코딩을 한다든지, 영어를 구사하려고 일부러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주는 일을 오래 한다든지 하는 활동이 그런 류의 공부다. 당장 성적과 무관하고 눈에 보이는 어떤 대가도 없으므로 단기적으로는 시간낭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버텨낸다면 열매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우리는 어릴적부터 이미 생활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경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 일상 대화를 하는 일을 아무 사전 준비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 뿌리가 일단 단단하게 만들어지면 이후에는 열매를 획득하는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장기적인 공부가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회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단기 성과를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장학금에서 탈락한다든지 하는 식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시험성적 등 단기적인 성과만 취득하다보면 실제로 해낼 줄 아는게 없으므로 졸업 후 장기적인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 둘을 적절히 조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우리가 익히 잘 안다. 시험에 대비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연습문제를 풀고, 성적을 잘 받은 후에는 잊어버리는 공부다. 장기적인 공부는 어떤 것일까 고민해보자. 장기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비유해도 좋다. 사업이 장기적으로 존속하려면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처럼, 그 자체로는 무료고 회사에 돈이 되지 않지만 그것으로 다른 돈 될 기회가 열리기 쉽도록 토대를 일구는 것이다. 플랫폼은 그 자체로 돈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건설하는 도중에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제대로 작동하면 다른 가치를 수월하게 창출되는 기반이 된다. 


장기적인 공부를 사업에 비유하자면 플랫폼이 되려는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플랫폼을 일구는 것 또한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만, 플랫폼적인 공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일단 중요하다. 그래야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얼마나 공부의 균형을 맞출지를 재어볼 수 있다. 장기적인 공부는 성적으로 보상을 주는 지식은 아니지만 지식이 나에게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되어주는 공부다. 수확을 위한 밭갈기 과정이다. 


열매를 수확하는데만 힘을 쓰면 결국에 밭이 망가져버린다. 공부도 이와 같아서, 성적을 받는데만 힘쓰면 결국에 무능해진다. 인생을 길게 보자면 장기적인 공부를 어떻게든 달성해야 한다. 밭을 비옥하게 일구면 결국에 열매가 열리지만, 열매를 수확한다고 밭이 일궈지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문학 교육을 오랫동안 '교양'이라고 부르며 부자들의 사교 도구 정도로 취급해왔지만 유럽인들은 인문학을 '기초 밭 갈기 La Culture de Base'라고 부른다. 쌀을 심어 잘 자라게 하려면 먼저 토양을 잘 고르고 갈아야 하듯 공부를 잘하거나 인생을 잘 살려면 그 바탕이 되는 다양한 기본 지식의 발판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Culture는 문화라는 뜻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원래는 땅을 간다는 뜻의 단어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토양'을 무시한 채 씨앗만 잔뜩 던져두고 많이 거두기만을 바랐다. 땅을 제대로 갈지 않고 씨를 뿌리면 조금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씨앗이 유실돼 싹조차 틔우기 어렵다. 오랫동안 토양은 그대로 둔 채 왜 뿌린 씨에 비해 거두는 것이 적으냐며 아이들을 닦달해온 셈이다.                                                                                                                            - 그물망 공부법 / 조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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