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두 가지 도구
글을 잘 쓰려면 기본적으로 아는게 많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는게 없어서 글 쓰기가 어려운것 같다.
글을 잘 읽으려면 기본적으로 아는게 많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는게 없어서 글 읽기가 어려운것 같다.
읽기와 쓰기는 배움의 두 가지 도구다. 읽고 쓴다고 해서 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읽기와 쓰기를 좀더 넓은 의미로 정의해보자. 수학을 배우든, 프로그래밍을 배우든, 음악을 배우든, 배움이 읽기와 쓰기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어떨까.
읽기는 그 분야의 언어로 기록된 것을 내가 습득하는 행동이고
쓰기는 내가 그 분야의 언어를 사용해서 표현하는 행동이다.
읽기: 악기를 연주한다면 악보를 통해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를 읽는다 (=듣는다). 수학 공식을 통해 수학자가 의도한 개념을 읽는다.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코드를 통해 개발자가 의도한 개념을 읽는다. 다른 사람이 자기 언어로 기록한 표현을 내가 이해하는 행위가 읽기다. 표현한 사람의 의도를 그 언어를 통해 파악한다. 쓴 사람의 의도를 잘 읽으면 좋은 읽기다.
쓰기: 음악에서는 음표를 통해 내 의도를 표현한다. 수학에서는 공식을 통해 내 의도를 표현한다. 프로그래밍에서는 코드를 통해 내 의도를 표현한다. 내가 내 생각을 내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가 쓰기다. 내 의도를 정확히 표현하면서 남이 읽기에 좋은 쓰기가 좋은 쓰기다.
분야를 막론하고, 공부는 읽기와 쓰기로 이루어진다.
잘 읽으려면 잘 알아야겠는데, 아는게 없으니 읽기가 쉽지 않다. 잘 쓰려면 잘 알아야겠는데, 아는게 없으니 쓰기도 쉽지 않다. 잘 읽고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많은 것을 읽지만 모든 것을 읽는 건 아니다. 나에게 도구로써 의미있는 것이 읽힌다. 예컨대 길을 걸으면서 바닥의 보도블럭 색깔을 읽지는 않는다. 실재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도구로써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의미있는 것만 읽는다. 나와 유관한가 하는 연결고리 (hook)가 있는 정보만 읽는다.
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조직화하는 행위다. 내 생각을 어설픈 언어로 표현했다면 그 표현된 것과 유사한 지식을 잘 읽을 수 있다. 단단하게 조직화된 쓰인 글은 다른 지식을 빨아들이는 연결고리 (hook)로 작용한다. 내가 쓴 것과 유사한 것일수록 쉽게 읽힌다. 내가 읽은 것과 유사한 것일수록 쉽게 쓸 수 있다. 읽은 것과 유사한 것을 쓰고, 쓴 것과 유사한 것을 읽는다. 그러면서 단단해지고, 동시에 넓어진다. 매 순간에는 유사한 것을 읽거나 쓰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면 처음과 전혀 다른 것을 읽고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새 성장한다.
나보다 잘 아는 누군가가 짜임새있게 작성한 글을 내가 읽고 배운다. 나는 글을 모두 입력받는게 아니라, 내가 이전에 표현해봤던 그것과 유사한 문장에 더 눈길이 간다. 아예 생소한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렇게 읽기와 쓰기는 유사한 개념 범위 안에서 번갈아가면서 서로를 키운다.
읽고->쓰고->읽고->쓰고->읽고->쓰고->...
눈사람을 만든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단단하면서 크기도 큰 눈덩이를 만들 수 있을까. 1)눈을 굴리다가 어느정도 커지면 토닥토닥 다지고, 어느정도 다진 후에는 또 2) 굴려서 크기를 키운다. 1) 쓰기 (=다지기/조직화하기)와 2) 읽기 (=덧붙여 키우기)의 반복이다.
쓰기는 기존의 눈덩이를 단단하게 뭉치는 과정이다.
읽기는 눈을 내 눈덩이에 붙이는 과정이다.
이미 있는 눈덩이를 뭉치기만 하면 크기가 커질 수 없다. 쓰기만을 고집하면 자기 생각에 같혀 뻔한 글만을 내놓게 된다는 뜻이다. 또 새 눈을 자꾸 붙이기만 하면 눈이 성기게 엉켜서 쉽게 떨어져나간다. 읽기만을 고집하면 지식의 깊이가 얕고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쓰기와 읽기를 번갈아가면서 점점 키우자. 음악에서, 수학에서, 또 프로그래밍에서 같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모든 커다란 눈덩이는 주먹만한 핵심에서 시작한다. 크기가 커지더라도 핵심과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읽는 정보를 눈에 비유하고 가진 지식을 눈덩이에 비유하면, 어떤 눈이 눈덩이에 새로 달라붙느냐는 애초 어떤 화두에서 시작했느냐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핵심과 유관한 정보는 달라붙고, 무관한 정보는 곧 떨어져나간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배울까. 눈을 뭉치는 시간보다 새 눈을 붙이는 시간이 많다. 단단하게 뭉쳐지지 못한 눈이 흐트러져 떨어지듯, 세월이 흘러도 큰 눈덩이로 키워내지 못한다. 시험을 보고 나면 금세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다지는 시간 없이 새로 갖다 붙이기만 반복한다.
자기 분야에서 읽기와 쓰기에 해당하는 활동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크고 단단한 눈덩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