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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Feb 18. 2022

감사하는 습관 훈련하기

정신력 강화 훈련 두 번째

불안 수준이 높아서 상태가 나쁠 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나 자신이 민폐덩어리가 되었다는 무기력감과 죄책감이었다. 공황발작이 올 때조차 쓰러지다 다칠지언정 발작 자체로 죽지는 않는다는 걸 꽤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지럽고 숨이 막히고 토할 것 같다가 손발이 강직되고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멀어져 가는 그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걱정이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이 무서웠고, 중요한 순간을 망쳐버리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다.


꽤 오랜 시간을 스스로 공황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지내는 바람에 나중에는 정말로 공황이 심각해서 걱정하고 무서워하는지 아니면 걱정을 너무 해서 공황이 오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공황이 먼저인지 걱정이 먼저인지.


이 악순환을 끊어낼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약의 도움을 받더라도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건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편안하게 마음을 먹자, 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기질적으로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편이었던 나에게는 몹시 힘든 일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으니까. 나의 문제가 사람들 눈에 이상해 보이고 같이 하는 일들에 민폐가 되는 것이 자명하니까. 그렇다면 그건 나의 잘못인 셈이고,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니까.


마음 편히 만나곤 하던 P와의 만남에서도 그랬다. 솔직한 내 상태를 털어놓다가 또다시 약간의 발작이 오면서 울어버렸을 때 나는 연거푸 "미안해요"하며 사과했다.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렸고 나에게 신경 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어느 정도 진정된 걸 확인한 P는 말했다.

- 난 정말 다 괜찮아. 그런데 레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너 혼자 힘든 것뿐인데 그놈의 미안하다는 소리는 안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정확히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별로 도움이 안 됐더라도, 자꾸 미안하다고 하면 정말로 내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도 괴로워.

그러니까 차라리 고맙다고 해줘.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는 나도 너랑 같이 있어준 이 시간이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으니까.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 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되었건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다는 말은 P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가는 말이었다.


말로만이 아니다. 고맙다는 말로 바꾸기 위해서는 언제나, 심지어 나쁜 상황이 닥칠 때조차도 고마워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했다. 언제 어디서나 고마워할 꺼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억지로 쥐어짜내기도 했다. 층간소음으로 찾아온 이웃이 칼을 들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 보거나 잘못 배달된 택배가 하필 비싼 물건이 아니었던 것을 감사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억지 부리지 않아도 고마워할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감사가 습관이 된 것이다.


고마워하는 것이 습관이 되자 스트레스를 대하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어떤 문제가 벌어지든 더한 상황을 즉각 떠올리며 걱정하던 나는, 이제 바로 그 더한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많은 것들이 실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여러 사람들과 상황들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돌발적이고 불안하여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완벽하게 해결하고 통제해야만 할 것 같은 중압감을 해소시켜준다.


막연하게 좋은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쉬웠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게다가 고마워하는 시선은 항상 외부를 향하게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세상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효과도 있었다.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나는, 흠 많고 부조리 투성이의 이 세상 속에서 저마다 애쓰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따뜻함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다. 비슷한 고민으로 검색해 들어와 읽어준 분들이 같이 힘 내주고 있어서 고맙다. 그리고 많고 많은 재미난 글 중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고맙다. 자주 말하지 않지만, 정말 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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