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 그래도 속은 여리디
어머니는 순한 곰 같은 오빠와 비교되며 드세고 모난 동생 취급을 받는 걸 안타까워하며 사람들에게 늘 말하셨다. 어린 마음에 여리다는 말이 가녀린 공주님 같은 건가 싶어 좋아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도록 내내 당돌하다거나 대차다는 말을 들어왔으니 외적으로 강해 보이는 건 분명한 것 같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레기는 마음이 너무 여리다'라고 한 걸 보면 속이 여리다는 것도 맞는듯하다. 말하자면 내유외강형이다.
마음이 여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였다.
마음이 착하고 감성적이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한다
연민이나 감정이입을 잘한다
그러니 마음이 여리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단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나고 거칠게 드러난 성격을 상쇄시켜줄 예쁜 점이었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게 문제였고, 그러니 내 속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더더욱 갈구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건 한참이나 나이를 먹고 나서였다. 그 일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그 누군가가 정해졌다. 나는 조직에 분노했고, 희생되는 사람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을 마구 드러내고 있었다. 조용히 커피를 건네주던 대선배 한 분이 말했다.
"마음 여려서 힘든 건 알겠는데, 당사자가 괜찮다잖아. 그 사람 판단을 무시하는 거야? 아니면 착한 척이 하고 싶은 거야? 힘든 사람 따로 있으니까 그만하고 자기 마음은 자기가 잡자."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고 반박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었다. 달리 방법도 없으면서 혼란한 상황에 개입된 불편함을 떨치고 싶어 착한 척하고 있었다.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다른 방법을 생각 못한 건 아닌지 그 판단을 조금 의심하기도 했다. 정작 힘든 사람이 따로 있는데 마음 상한 티를 내고 다니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의 '속이 여리다'에는 이런 마음들도 같이 있었다.
냉정하거나 못된 언행을 하지만 착하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
다른 사람이나 상황이 나를 좋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
상대를 약자로 간주하거나 동정하는 마음
타인의 불행을 지켜보는 불편함에 견디기 싫어하는 마음
착하고 선하다는 건 말과 행동을 착하고 선하게 행할 때를 말한다. 겉으로 차갑게 못되게 굴었다면 차갑고 못된 사람이다. 보이는 이상의 속에 숨은 진심까지 알아달라니, 나를 넘겨짚고 짐작해달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속은 여려'라고 넘길 수 있는 건 그럼에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친절한 타인들의 몫일뿐, 나 자신에게 할 말은 아니다.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과 행동으로 바르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도록 노력하는 게 맞다.
올바르고 친절한 마음으로 행했다면 남이 알아주든 말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타인이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행한 어떤 일도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 불행은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으로 위로하는 편이 낫다.
내유외강형이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외유내강형이 되거나 하긴 어려운 일이고, 외유내강형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을지 모르니 굳이 따라 하려고 하진 않겠다. 다만 내면적으로 조금 더 중심을 잡고 단단하게, 외적으로는 조금 더 친절하고 관대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10년쯤, 그걸로 모자라면 20년쯤 노력하면 속이 조금은 더 찰기 있고 쫀쫀하게 강한, 겉이 조금은 더 부드럽고 가벼운 겉바속촉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장래희망 : 겉바속촉형의 맛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