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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Aug 03. 2021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줘

[멘탈잡기] 솔직함이 능사가 아니다

20대 초반의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곤 했다. 어딘가에 있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매었다고나 할까. 되돌아보면 애정결핍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랑받고 싶어하고 완전히 사랑해줄 사람을 원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특이하다거나 4차원이라거나 하는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점점 더 사람들과 내가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고, 그만큼 더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상식과 관례를 좀 따르라는 잔소리를 돌려 말해주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알아들을 만큼 그 시절의 나는 성찰이 깊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온전한 어떤 한 사람을 찾는 여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찾았다 싶었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니었고,  이 사람이구나 했다가도 실망하고 돌아서곤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몇 가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몰랐다. 실수가 아니라 당연히 필요하다고까지 생각했으니 대참사가 아닐 수 없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면 내 단점들도 사랑하고 내 잘못들도 좋게 봐줄 거야. 내 단점들을 싫어한다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실수까지 감싸주는 게 진짜 사랑이지.

그럼에도 나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알아보고 고쳐주는 게 진짜야. 정말 나를 아낀다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다치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가만히 둘 수 없지 않겠어?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벌써 내가 겪었을 대참사들이 예상되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내 단점들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솔직함을 명분으로 삼아 단점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람인가 싶으면 '이런 점은 어때, 이것까지 좋아해 줄 거지?'하고 테스트하듯 일부러 단점을 드러내거나 못되게 굴기도 했다. 사랑하면 예의 같은 건 하나도 필요 없는 양 무례를 떨었다. 싫다고 하면 나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사랑에 눈먼 놀라운 청춘 중에는 다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말이 달라지는 것이 공식이었다. 내 쪽에서 상대방의 단점들이 밉게 보여서 끝내기도 했는데, 그건 또 상대방이 잘못한 탓으로 여겼으니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두 번째로는, 일단 나를 아껴주고 좋아해 준다는 사실만 확인되고 나면, 그가 하는 조언들은 모두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나를 더 나아지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기질적인 부분들까지도 바뀌려고 애쓰고 변한 척 연기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자학했다. 자괴감에 빠지고 나면 더더욱 이 사람이 아니면 이런 쓰레기 같은 나를 누가 좋아해 줄까 싶어서 더더욱 매달렸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점을 이용하려 하거나 심각하게 가스 라이팅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은 건 운이 좋았지만, 정상인들은 당연히 그런 모습을 버거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잘못인지 왜 몰랐냐면,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해줄 사람만 갈구했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였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단점이 싫지만 사랑할 수 있고, 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잘못이 더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의 문제가 그를 곤란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기다리며 곁에 있는 것이 그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단점들은 당연히 보인다. 싫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곧바로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잘못을 하면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항상 괜찮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하는 고통은 더 아픈 법이다. 그러니 더 조심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문제들을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고칠 수 있는 단점은 고쳐보려고 애써보기도 하고, 그러면 싸울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고 극복해 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내가 했던 단점들의 전시와 테스트하듯 하는 잘못들은 솔직함을 가장한 위악이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부분들은 그런 채로 같이 가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그도 나도 완벽하지 않은 바로 그 지점일 뿐이다. 사랑하는 상대가 성숙한 인격체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바꾸려 들지 말고 그저 같이 걷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그가 바뀌기도 내가 바뀌기도 하고, 모두 그대로인 채로 적응이 되어 편안함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상대를 믿고 기다릴 줄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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