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상태가 엉망이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랬다. 피곤하고 아프고, 그러니 짜증도 나고 빨리 해치우고 싶고, 그러다 보면 실수하거나 놓치는 것들이 나오고 또는 실수하거나 놓쳐서 일이 더 생길까봐 무섭고 불안하고, 왜 이러고 사나 우울하다가 멍해지고,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어 지고.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가만히 멍하게 있다가 출근하면 더 피곤하고... 이런 악순환의 계속이었다.
악순환의 반복 끝에 공황발작이 왔는데, 문득 토할 것 같이 어지럽다가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더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미련하게도 발작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악순환을 이어갔다. 발작을 겪고 왜 그랬는지 원인을 열심히 찾아보고 어떻게 하면 피할지 생각하고, 피할 방법이 없으니 무기력감에 멍하니 있다가, 가만히 손을 놓고 있기 불안하니 다시 일을 하고, 다시 발작이 오고. 심지어 계속 겪어내며 적응해 버리리라 하는 말도 안 되는 깡으로 버티기도 했다. 급기야 대문 밖으로 한 걸음 떼기도 힘들 지경이 되고서야 경련으로 굽은 팔다리를 떨며 엉엉 울고 모두 내려놓았다.
비슷한 상황인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은데, 이 정도까지 왔다면 일단 병원을 찾길 바란다. 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겪어본 입장에서 느끼길 공황발작은 심리적인 부분도 크지만 그만큼 몸의 문제도 크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생각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고장난 뇌신경전달 체계를 교정하는 약물이 필요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실제로 나는 약물의 도움으로 당장 편하게 숨 쉬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서야 내 사고방식이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고 다스려 볼 여력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정상생활에 가깝게 지낼 수 있다. 병원의 도움을 피하지 말자.
살만하다 싶은 요즘 신경 쓰는 것은 더 이상 고장 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 가운데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게 살던 대로 살았다. 제대로 쉬지를 않았다. 대신 괴롭고 불안하고 우울감이 오면 불안증이나 우울증에 대한 책과 글들을 찾아 읽곤 했다. 그걸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할지, 어떻게 대처할지 이런 것들을 알면 다 해결될 거라고 여겼다. 분명, 책과 글들은 도움이 된다. 사고방식과 감정체계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같은 비중으로 몸 자체를 챙기는 일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피곤한데 성격 좋은 사람은 없다. 아픈데 관대하기도 힘들다. 체력이 바닥나면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몸이 피곤하고 아프면 뇌는 즉각 온몸에 예민해지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바닥난 체력에 피곤에 절어 아픈 사람의 뇌에서 쉬라고 보내는 신호들을 극복하고 좋은 생각만 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면, 득도의 경지까지 이르러야 한다. 보통 사람인 나는 득도는 못하겠으니, 그냥 몸을 챙기기로 했다.
쉬어야 한다. 잘 쉬어야 한다. 잠이 부족하면 자야 하고, 밥은 천천히 충분하지만 넘치지 않는 양으로 먹는다. 너무 피곤하다 싶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앉아서 혹은 누워서 쉰다. 눈을 감아주면 더 좋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중요할 때 쉬고 있냐 타박을 들어도, '죄송합니다' 하고 쉰다. 쉬어야 할 바로 그때 쉬어주면 잠시 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지만, 쉬어야 할 그 순간을 미루면 오래도록 쉬어야 한다. 미루고 또 미루면 쉬어도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가 몸을 망가뜨려버린다.
놀기도 잘 놀아야 하는데, 노는 즐거움이 뇌의 긴장감을 덜어주는 것 같아서다. 놀 때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오롯이 전하는 SNS는 일절 들어가지 않고, 화려한 연예인이 나오는 매체도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평가, 나와의 비교, 감정이입... 등등의 과정 때문에 내 긴장감과 불안감이 줄어들긴커녕 유지되거나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다. 그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나의 뇌와 신경세포들이 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작은 공예품을 만들거나 처음 만드는 요리를 해보는 편이 낫다.
운동을 놀이로 삼으면 더 좋다. 달리는 거리나 동작의 횟수와 같은 목표를 가급적 소소하게 잡고 시작한다. 운동하는 동안은 신체 곳곳을 움직이느라 바빠서 다른 불안감이나 긴장은 줄어들곤 한다. 몸을 움직여 온 몸이 따뜻하게 피가 도는 느낌이 들고 나면 왔던 우울감도 사라지곤 한다. 감정상태가 정말 나빴을 때는 운동 한번 하는 게 우울증 책 열 권 읽는 것보다 힘들었는데, 그 어려운 한 번을 꼭 해야 한다. 몸을 안 움직이던 사람이 몸을 쓰면 근육통이 따라오곤 하는데, 누워서 쉬면 3일 걸려서 풀리지만 다음날도 운동을 하면 보다 쉽게 풀린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소소한 목표치를 높이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덤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운동을 하다 보면 체력은 따라서 올라온다. 체력이 좋아지면 쉽게 피곤해지지 않고, 단언컨대 체력이 받쳐주면 이미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해소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몸의 문제 때문에 걷기와 약간의 근력운동 외에는 못하는 처지이지만 소소한 운동 한 번을 할 때도 온몸 구석구석의 쓰지 않던 근육이 힘을 내는 것을 세심하게 느껴본다. 이런 건 좀 예민하게 느껴도 좋은 게,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때마다 나 자신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이것은 내 경험에 따른 기록일 뿐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정말 힘들어서 한계다 싶을 때에는 꼭 쉬고 놀자는 거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휴식을 곱게 보지 않고 더 밀어붙이려는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 있지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 나의 건강과 생명보다 고객에게는 더 중요한 일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지켜야 한다. 딱 그만큼은 뻔뻔해져도 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패배자가 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다 좋은데, 일단 내가 살고 나서의 일이다. 일단은 잘 쉬고 잘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