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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l 02. 2021

정말 열 받을 때 화 잘 내는 법

[멘탈잡기_3-2]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설명해내기

이전 글에서 이해 안 되는 문제적 인물들도 그럴 수 있구나 인정하고 그냥 두는 것인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이자 존중임을 이야기했지만, 사람이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생각 없이 상처 주는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아무리 좋게 넘기려 해도 마음이 피폐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을 고통 속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 분명하게 화를 내야 할 때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화를 적절하게 내지 못하는 편이다. 꾹꾹 참으며 괜찮은 척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쯤 갑자기 폭발해버리곤 했다.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당연히 상대방과의 관계는 박살나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낸다 = 관계를 망친다


이게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더더욱 화를 내지 않고 참다 보면 한번 터질 때 폭발력은 더욱 커졌다. 악순환이다.


마지막 대폭발 이후 처참한 폐허 위에서 점잖은 데다 유쾌하여 모두와 잘 지내 보이는 C 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화를 참을 수 있냐고. 어떻게 하면 화가 안나는 거냐고.


- 나도 화 잘 못 참는데? 나 화 잘 내.

- 언제? 어떻게 화내길래 난 본 적이 없지?

- 그럴 리가. 레기도 봤을 텐데? 난 그냥 말을 해버 리거든.

  방금 말씀하신 건 기분이 좀 나쁘네요.

  일을 이렇게 진행하시면 전 곤란한데요.

  

생각해보면 C 씨는 방금 좀 별로다, 나빴다, 이런 표현을 정색하지 않고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좀 애매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버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럼에도 우리가 C 씨를 편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건, 기분 나빴을 때 바로바로 표현이 되니 주변에서 파악하기도 고 맞추면서 함께 있기도 수월해서였다.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 화가 났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화를 뿜어내는 것보다 관계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고백한 김에 더 솔직하게 못난 내면을 밝히자면, 감정적으로 화를 낼 때는 내 분을 푸는 것에 더해 상대를 벌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폭발할 것만 같은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고 동시에 그로 인해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사과하도록 만들겠다는 심보다. 혹 상대방이 뻔뻔하게 굴거나 역으로 화를 낸다면 모두에게 이 꼴을 보게 해서 상대의 악랄함을 만천하게 알리겠다... 이런 유치한 감정.

이런 감정들은 순간적인 감정풀이에 약간의 도움을 줄지언정, 관계에는 치명적이며 화가 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냥 갑자기 폭발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상한 사람이 화를 낸 거니까 그 원인은 크게 신경 쓸 필요를 못 느낄 수밖에.


누구라도 화낼만한 일이었다 저 사람은 내 화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지는 말자. 듣는 사람에게 나와 같은 생각과 같은 감정을 강요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니까. 대학생 때 길을 걷다 웬 아저씨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아저씨가 때리고 욕설을 중얼거리며 멀어져 가는 동안에 나는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근처에서 나를 보고 뛰어온 친구는 누구라도 난리 날 일이라며 왜 한마디 하고 화내지 않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있지 않았다. 그냥 심하게 놀랐고 무서웠을 뿐이었다. 사람마다 화가 나는 지점은 모두 다르고,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도 모두 다르다. 



마지막으로,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났을 때 분위기를 망칠까 봐 웃어넘기거나 아닌 척하지 말자. 보통 그렇게 웃어넘기고 괜찮아하고 넘긴 것들이 폭발력으로 쌓이고 만다. 잠깐의 싸한 분위기가 광기의 분노 폭발 현장보다는 훨씬 낫다. 시간이 지났을 때 별일 아닌 추억이 되느냐 서로의 상처와 흑역사로 남느냐의 문제다. 일시적인 싸한 분위기 정도는 그냥 견딜 용기도 내야 한다.


너무 힘주지 말고, 그저 평소 말하듯이 '조금 기분 나쁘네' '이건 화나는데'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자. 상대가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기본적인 호의가 있다면, 먼저 사과하거나 화제를 돌려 분위기를 전환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잠시 시간을 두자. 말이든 뭐든 하려고 들지 말고.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계속해서 기분 나쁜 말과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과는 서로 맞지 않는다. 서로 조금 더 성장할 때까지 조금 멀리 하자. 굳이 계속 만날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손절도 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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