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자습시간이었다. 자습시간이면 S는 교단에 서서 자습을 하면서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게 하거나 칠판에 떠든 아이의 이름을 적어야 했다.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 교실이 소란스러우면 S도 왜 조용히 시키지 않았냐고 핀잔을 들어야 했다. 혼나지 않으려면 아주 조용하거나, 한 두 명쯤은 칠판에 이름이 남아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죄다 칠판에 적었다간 반 아이들 이름을 죄다 적어야 할 일이었다. 너무 일찍 이름이 적힌 아이는 '어차피 이름 적힌 거'하면서 더 떠들어대기도 했다. '쟤도 떠들었는데'하며 되려 소란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 꼼꼼하게 기록해야 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말을 멈추지 않을 때는 선생님이 된 것처럼 무섭게 윽박지르기도 해야 했다. 그러다 조용한 시간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아이들 이름을 칠판에서 지워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S는 고자질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이들은 수군거리기를 멈추지 않다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여느 때처럼 S가 "조용히 좀 하자!"하고 배에 힘을 주고 낮은 목소리를 울렸을 때였다.
"네가 뭔데! 꺼져라!"
남자아이들 사이에 대장 역할을 하던 상용이라는 아이가 벌떡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 반 아이들 전부 상용이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돌려 S에게 시선을 모았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고 있으랬잖아."
"그러니까 그건 선생님이고, 넌 뭔데 네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고! 재수 없는 년!"
상용이의 뒤에 있던 남자아이 한 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른 아이들이 따라서 신나게 박수를 쳤다.
S는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뒤돌아 칠판에 상용이의 이름을 적는데, 어깨에 무언가 날아와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반동강이 난 지우개였다. 다시 돌아보니 상용이가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또 다른 아이가 지우개를 손톱으로 뜯어 던져서 S의 머리에 맞았다.
"명중!"
소리 죽여 낄낄대는 웃음이 일렁이며 퍼져갔다. 지우개 조각이 여기저기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소리들이 숨어들었다.
'꺼져라.'
'재수 없어.'
'잘난 척은, 건방지게.'
S는 따끈한 무언가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생각이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건지조차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하얗게 질려있는 S에게 N이 다가왔다.
"괜찮니?"
N이 나서자 여자아이들의 조롱이 멈췄고, 내심 N을 좋아하던 남자아이 몇몇도 얌전해졌다. 상용이는 '쳇!'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너무 하지 않아? S도 선생님이 시켜서 그런 것뿐이잖아. 그만들 해."
창밖의 햇빛을 등으로 받으며 옷에 붙은 지우개 조각을 털어주는 N은 S의 눈에 꼭 우아한 선녀님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