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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Oct 08. 2021

자녀는 없습니다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인사말처럼 따르는 말이 있다.


"애는 몇이에요?"


그래도 요즘은 이런 걸 묻는 게 조심스럽다는 듯 "아이는......?"하고 말끝을 흐리곤 한다.


"아이없어요."라고 대답하고 나면 반응들이 참 다양하다. 일부러 안 낳느냐, 왜 애를 안 낳느냐, 나중에 나이 들면 허전할 거다, 애 키우기 힘든데 둘이 조금 더 즐기는 것도 괜찮다, 늦게 낳으면 더 고생이다, 요즘 난임이 많다던데 병원은 가봤냐, 아이가 없으면 남편 마음이 뜬다더라... 등등 말할 수 없이 많은 반응을 만날 때마다 '인연이 있을 때 애가 생기겠죠'하며 씩 웃어넘기곤 했다.


요즘은 나이가 있다 보니 반응이 비슷해져 가는데, '아이고, 자식이 없어 어쩌나'하는 표정으로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고는 남의 집 일 말하듯 병원 치료로 출산한 집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니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남편과 나만 아는 비밀 하나. 나는 이제 임신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진지하게 아이를 가지려 한 적도 없었고 자연스레 들어서면 낳자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궁수술을 결정할 때 나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을 것임이 확정되어도 괜찮은지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거듭해서 확인해야 했다. 남편은 다른 걱정이나 주저함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내 마음이 괜찮을지, 수술만 하면 몸은 괜찮아지는 건지만 신경 썼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전에도 우리는 아이를 강하게 원하지도 않았고 변한 것이 없으니 정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던 때와 절대적으로 불가능해진 지금은 사실 많이 달라져있었다. 자신감은 많이 떨어졌고 남편에게 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까 두려웠고 불안감에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몸이 회복되고 체력이 올라오고 나니 감정도 조금씩 맑아졌다. 그동안 많이 위축되고 불안했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에서 낳지 못하는 여자가 된 것이, 마치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자꾸 남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떠나보내 주고 싶다가도 잡아두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넌 나를 그렇게 모르냐? 네가 싫어지고 모자라 보였으면 꼬박꼬박 집에 기어들어올 놈이냐, 내가? 난 너 우울증 오는 줄 알고 겁먹었더니, 뭘 그런걸 걱정하고 그러냐."


그랬다. 남편 놈은 총각 때부터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던 인간이었다. 매일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당연한 그 일이 이 인간에게는 강력한 소속감과 편안함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난다 = 좋다, 귀찮다 또는 싫다 = 안 본다 의 단순한 공식으로 사는 사람.


"난 좋을지 나쁠지 모를 아이가 있는 미래보다는 당장 내 눈앞에 네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나대는 걸 보는 게 더 좋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위축되는 일은 없었다. 가끔 쓸쓸하긴 하다. 우리가 늙었을 때에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을 거라는 게, 언젠가 한 사람이 먼저 떠나는 날 남은 사람은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미안하고 서운하다. 그래서 둘이 같이 있는 동안 더 즐겁고 재미나게 보내려고 한다.


여전히 아이가 없다는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낳을 수도 없다는 말까지 보탰다가는 더 안타까워할 텐데, 아이를 애타게 원했는데도 가질 수 없는 부부들과는 달리 우리끼리는 안타까울 일 아니라서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맑게 다 괜찮다고 하는 건 또 거짓말 같아서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불쌍한가? 안타까운가? 아무 상관없이 잘 살고 있는가?


역시나 남편은 '그건 모르겠고~'하며 새로 끓인 참치김치찌개의 맛이 더 좋아졌다며 마냥 즐거워한다. 나도 모르겠으니 남편이 사 온 김이나 한 봉지 뜯는다. 김치찌개 먹을 때는 김에 밥을 싸 먹어야 제맛이니까.


김을 바삭하게 맨밥에 싸먹느냐 국물에 싸악 적셔 녹이듯 먹느냐는 진지한 존쟁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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