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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n 26. 2021

미칠 것만 같을 땐 숨 고르기를

[멘탈잡기_2] 지나갈 동안을 견뎌내기

소소한 병으로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소소하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입원도 하고 나름 할 건 다 챙겨해 봤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릴 때쯤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프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간호실 호출 버튼을 누르고 간호사 선생님 얼굴이 보이기까지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링거를 만지작거리며 "진통제 용량을 좀 더 올릴게요"하고 돌아서는 간호사 선생님 뒤통수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니, 이거 뭐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거 없소? 이거 진통제가 아니라 수술이 잘못된 거 아니오' 하고 아주 크게 마음으로만 외쳤다.


어찌할 도리 없이 가만히 견뎌내고만 있노라니,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남편 놈이 미웠고, 이 와중에 전화로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옆 침대 아줌마는 미친 것 같았고, 비싼 병실은 돈 아깝다며 당당히 6인실을 원했던 어제의 내가 원망스러웠고, 이상하게 싸늘한 병원 공기에 분노했고, 보이는 모든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통증이 아까 보다 좀 약해진 걸 느끼며 다시 잠들었다. 다시 깨어난 후에 통증은 많이 줄어 있었고, 보이는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또 평화로웠다.


가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미칠 것만 같은 상황을 만나면,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그 시간을 생각한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것을 하고 나서는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어떤 시간은, 그저 견뎌내야 한다


힘들다고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봐도 위로가 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봐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해봐도 분이 풀리지 않는 어떤 무섭게 미칠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온전히 견뎌내는 것이 낫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무언가를 '해서' 풀릴 일이라면 다행인데, 마음의 고통은 내가 무언가 하거나, 무언가를 받는다고 해서 '짠!'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미칠 듯이 힘들 때는 어느 정도의 시간은 그냥 견디며 지나가게 두기로 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가늘고 길게 내쉬기를 반복하다 보면 가슴 근처 어딘가가 조금 안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여러 번을 반복하고 필요하다면 여러 날을 반복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했던 어떤 부분들이 달라져있기도 하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볼만해 보일 수도 있고,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숨을 내 쉬며 다시 생각해본다. 마음이 어려서 폭발할 것만 같은 내 기분에 취해 남들에게 표현해버린 날카로운 말들을.


아, 너무 부끄러우니 그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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