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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n 23. 2021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멘털 잡기_1]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편인가요?

중학생 때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으면 내릴 때까지 배에 힘을 꽉 주고 똥배를 감추려고 애쓰곤 했다. 눈에 띄게 마른 편이었는데도 살짝 나온 똥배를 들키는 게 그렇게도 무서웠다. 배에 힘을 빼는 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눈치채고 '어머, 어쩜 저렇게 배만 볼록 나왔지? 징그러워. 아니 우스꽝스러운 외계인 같아'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그럴 때 옆에 있던 친구가 하필 꼭 집어 "너 생각보다 배가 좀 나왔네"라고 한마디만 찔러주면 다음과 같은 뇌의 흐름이 시작된다.

[어떻게 그걸 봤지?]-[배 나온 게 진짜 심하게 티 나나?]-[근데 굳이 이걸 말해야 돼?]-[날 놀리는 거구나]-[날 싫어하나 봐/내가 싫어지겠지]

이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100% 상처 받아버리곤 했다. 사소하게는 그날의 옷차림새에 대한 언급에도 그러했고, 큰 목소리나 발음, 화장실을 자주 가는 데 대한 지적이나 조언을 들어도 그랬다. 그러니 업무상 생긴 문제로 지적받거나 항의라도 받는 날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잠도 못 자는 지경이었다.


큰 문제가 생겨서 그에 대한 반응들을 받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어느 정도 받아들이거나 견뎌내거나 해야 한다. 다만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여 상처 받거나 사소한 말들에까지 상처 받아버리는 건 스스로 너무 괴롭다. 게다가 이런 감정은 상대방에게도 티가 나게 마련이라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편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지적이나 놀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아주 작은 관심의 표현일 때가 많다. 내가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 대해 말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상대를 관심 있게 보고 있음을 드러내고 싶어서일 때일 것이다. 낯간지럽지만 곱게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당신의 외형적 특징을 내가 알아봤어요. 

신의 독특한 행동이 흥미롭군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 좀 더 알아두고 싶어요.


관심의 표현이라고 해서 '그럼 나한테 호감인 건가'라고 까지 생각하면 곤란하다. 상대에게 호감이 있어서 이런저런 말들로 친해지려 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너무 싫어도 이런저런 말들로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을 수 있다. 물론 진짜 괴롭히고 싶어서 뱉은 말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냥 툭 던진 소소한 지적이나 잔소리 정도의 수준에서는 말 그대로 관심일 뿐이고 일단 적당히 잘 지낼 생각에서 나오는, 기계에 기름칠하듯 뿌리는 말들일뿐이다. 더 넘어서 한마디 말로 상대의 진심을 꿰뚫어 보았다고 하지는 말자. 정말로 나를 괴롭히려는 시도라면 나쁜 말들이 좀 더 지속적이고 집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 관심들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아주아주 작은 크기라는 거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고 스스로를 향한 시선과 말들에 가장 민감하다.


내 똥배를 알아채고 "와, 보기보다 배가  좀 있네? ET냐? 거미인간이냐?"하고 놀렸던 친구는 몇 년 후에 다이어트 이야기를 할 때 내 배를 보여주자 "와, 보기보다 배가 좀 있네? 몰랐네?"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고 "근데 나 다이어트 때문에 요즘 6시 이후엔 안 먹는다고 했잖아. 저녁 약속을 지금 잡으면 어떡하냐?"라고 했다. 그렇다. 나도 친구의 다이어트에 대해 잊고 있었다.


상처를 잘 받을수록 나 자신에게 관심이 더 많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오히려 상대방인 사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의 말들은 알고 보면 깃털처럼 가벼워 날아다니는, 스쳐지나 보낼 말들이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 말들을 내어 놓는 순간에 그 사람은 적어도 아주 작은 관심을 나에게 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마음은 배려였을 수도 있고 호감이었을 수도 있고 최소한의 존중이었을 수도 있다. 그저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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