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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Oct 26. 2021

여전히 불편한 나의 아버지

부모님을 보는 괘씸한 시선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오고 마음이 또 한 번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번엔 일주일 만에 정상궤도로 돌아온 듯 하니 복구가 빠른 편이다. 남들은 시댁이 불편하고 친정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던데, 나는 시댁은 시댁이라 불편하고 친정은 시댁보다 더 불편하다.


언젠가 상담해준 의사 선생님은 내가 어머니에게는 의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며 성장했으며 아버지에게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선택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결정들은 나의 내면과 차이가 너무나 커서 고장이 안 날 수가 없었던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었고 자타공인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었다. 스스로 가치관을 갖지도 못한 어린아이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싶었다.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내 마음을 끊임없이 질책하고 비난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상담 이후에 한동안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음을 고백한다. 불효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 그 시간은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나에게 절대적이었던 아버지는 사실 스스로가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쉽게 전달되지 않는 감정에 쉽게 흥분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렸고 자식이라는 관계였기 때문에 그에 휘둘린 것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 마음 때문에 휘둘렸다. 아버지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인정하고 마지막으로 잘 보이고 싶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나서야 나는 분리되어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당신의 기준에 따른 도리와 법칙들,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욕심내는 아버지를 보는 것은 아프다. 그런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때로는 아버지를 구박하고 때로는 나를 구슬리면서 어떻게든 조율할 수 있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도 아프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에게 맞출 능력도 없고 그럴 의향도 없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이, 나 스스로 불효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과정이었음을 설명할 수 없어서 아프다. 불효자가 되고서야 더 이상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니 그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자식으로서 부모를 미워하는 시간은 너무나 분열적이라 고통스러웠으니.


누군가 그랬다. 부모는 자식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거라고. 머리가 하얗게 새고 병든 몸을 힘겹게 일으키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거라니, 자식 나이가 마흔이 넘고 이제는 부양받을 때가 되어서도 아직도 걱정을 넘어 욕심이 난다니, 참으로 아름답고도 눈물겹고도 숨 막히게 답답하다.


어쨌든 나는 내 삶을 산다. 당신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방식으로, 당신의 성에 전혀 차지 않는 수준으로, 하지만 비로소 내 스스로 삶을 살고 있고 꽤나 행복하다. 이런 당신의 유전자를 사랑할지 말지는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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