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기, 결혼할 때 다이아반지 받고 싶었어?
TV를 보던 신랑이 느닷없이 물어왔다. 유튜브를 보며 코바늘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무슨 소리냐며 신랑을 쳐다보는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 왜? 난 별로 안 갖고 싶었는데?
- TV에서, 저 사람들이 여자라면 누구나 결혼반지는 다이아로 받고 싶어 한대.
- 그렇대?
- 너도 다이아반지 받고 싶었는데 혹시 말 못 한 건가 싶어서.
아, 저 간사한 연예인들이 또 신랑의 주눅 세포를 자극해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결혼할 때 신랑은 다이아 반지는커녕 자기 집도 없이 형의 집과 선배의 자취방과 내 자취방을 오가며 지내던 중이었다. 재산은커녕 아직 대출만 남은 사람이었다.
내가 임대주택을 구하게 되면서 그게 그대로 신혼집이 되었다. 집이 작으니 딱히 혼수로 채울 것도 없어서 내 자취방에 있던 가구를 그대로 가져왔다. 자취방 옵션으로 쓰던 세탁기와 냉장고만 새로 샀는데, 이건 신랑이 혼수랍시고 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이 일하던 사이여서 수입도 빤한데, 그것만 해도 참 애썼다 싶었다.
워낙 얼렁뚱땅 해치운 결혼식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신랑은 다른 사람들 결혼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둘이 합의되는 대로 맞추면 되는 거 아니냐고 편하게 생각하던 신랑은, 신혼집이며 혼수며 예단이며 뭐 이것저것 다 '이 정도는 해야지'하는 주변 반응을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된 터였다.
신랑의 주눅 세포가 반응하는 건 대부분 '여자들은 누구나 원한다'는 어떤 것들이다. 지난번에도 어디서 '여자들은 당연히 신혼여행은 호텔로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와서는 주눅 들어 버렸다. "우리 묵었던 펜션이 어지간한 호텔보다 비쌌다고!"하고 큰소리를 내고서야 신랑은 다시 해맑아졌더랬다.
이번엔 또 반지구나. 이건 한 번 말 나올 줄 알았다.
우리는 결혼반지가 있지만 없기도 하다. 연애하면서 처음 맞춘 18K 금반지를 그대로 결혼반지로 하기로 했다. 이건 결혼반지가 아니지만 결혼반지이기도 하다.
- 다이아반지 못해줘서 미안해. 지금이라도 하나 사줄까?
- 신랑아, 다이아반지 해줄 돈 있으면 컴퓨터나 해줘라. 이왕이면 그래픽카드 3060 달고. 요즘은 더 좋은 거 나왔나? 확 하이엔드급으로 맞춰줘라. 그러고도 다이아반지 생각이 나거든 아이패드 프로도 덧붙여주면 좋겠네.
- 그거랑 이거랑 같냐?
- 나한테 다이아반지는 그것보다 가치가 없어.
나 알잖아? 반지 한 번 끼면 낀 채로 자고 일하고 씻을 때도 낀 채로 씻는 인간이야. 다이아면 귀하게 대접해야 되니까 못 끼겠지? 그러면 반지함에 넣어서 서랍 어딘가에 처박힐 테지. 그러면 나 알잖아? 눈에 안 보이는 물건은 없는 물건이 될 게 뻔해. 매주 한 번은 찾는 손톱깎이보다 나한테는 가치 없는 물건이야.
- 그래도 저 사람들이 '여자라면 누구나 다이아반지 받고 싶잖아요'라고 말했단 말이야.
- 많이들 받고 싶어 하긴 할 거야. 아닌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나는 아닌 사람 중에 하나지.
- 아닌 사람들도 있다면 저렇게 말할 수 없는 거잖아. 저 사람들은 아주 확신하고 있어.
- 과장한 거 아닐까. 아니면 본인의 욕망이 부끄러워서 자신만의 욕망이 아닌 모두의 욕망으로 포장하는 중이거나.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
어느새 신랑의 주눅 세포가 잠잠해지고 따짐 신경이 활성화되었다. '~라면 누구나 그러하다'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 쓸 수 없는 말이라는 둥, 반대의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강조의 목적으로 상쇄될 수 없다는 둥,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신랑이 특히 따지기 좋아하는 문제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따져 드는 모습이 주눅 든 것보다는 훨씬 보기 좋긴 하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