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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an 19. 2022

결혼식의 의미

결혼식부터 얼렁뚱땅이었던 우리

처음 결혼을 결심할 때의 내 계획은 그저 혼인신고였다. 내 입장만 보자면 서로 법적인 보호자 자격을 갖추고 싶은 것뿐이어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혼인신고를 해야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 결혼식을 올려야 친인척들이 느그 얼굴이라도 한번 볼 거 아이가. 안그라믄 일 있다고 모일 때마다 소개하고 설명하는 게 더 귀찮을끼다. 그냥 마 결혼식 한번 해 뿌라.


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결혼식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맞는 말이다. 4촌 이내 양가 식구들만 다 모아도 인구가 꽤 되는데, 따로 식사자리를 잡고 인사하고 하느니 결혼식 한 방이 낫겠다 싶었다.


계획을 바꾸자고 넌지시 결혼식 이야기를 꺼내자 신랑은 숨겨둔 본심을 드러냈다.


- 잘됐다. 친구들한테 장가간다고 자랑해야겠다. 크크크.


아, 몰랐다. 남자에게도 결혼식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서로서로 누가 더 꼴통인지 경쟁하고 누가 더 장가도 못 갈 놈인지 놀려대는 오랜 친구들에게 마음껏 까불 수 있는 꽤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그래서 저렴하지만 한 번에 한 팀만 예식을 올리는 곳으로 예식장을 골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한 번에 서로 다 알아볼 수 있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신랑이 맘껏 즐길 수 있었으면 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둘 다 한창 바쁘던 시기였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을 그 기회로 오랜만에 만나고 인사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평소에 치마도 입지 않는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서 하얀 원피스 스타일로 고르고, 억지로 웃어야 하는 웨딩촬영을 생략하고 적당히 알림장 수준의 청첩장을 만들어주었더니, 신랑은 그 말도 안 되는 청첩장을 좋다며 주변에 자랑스럽게 뿌려댔다.


웨딩 사진을 찍지 않는 대신 그동안 찍은 우리 사진으로 간단하게 조잡한 영상도 하나 만들었다. 축사나 축가나 이런저런 이벤트에서 지인들이 예식 과정에 같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보자고 준비하고 있을 때, 모든 준비를 엎을 사건이 생겼다.


어머니가 암으로 수술을 끝마쳤다는 연락이었다.


- 미리 말하면 니 또 결혼 미룬다했을거 아이가. 한 번 미루고 하다 보면 마 결혼 안 한다 하지 싶어서 말 안 했다. 니 결혼식은 꼭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절대로 식 미루지 마래이.


어머니가 별 일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여, 좀 더 편히 자리를 지키려면 전날 하루를 꼬박 굶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꺼이 굶으실 거라고 하셨지만 그러지 마시라고, 아주 금방 끝날 거라고 약속했다. 략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는 취소했다. 축가부터 없앴다. 축사를 부탁드린 분께는 가급적 짧아야 한다고 부탁했다. 영상도 예식 과정의 빈틈만 메울 수준으로 더 짧아졌다.


우리 결혼식은 13분 만에 끝났다. 걱정이 되어 이틀을 굶고 있었던 어머니는 식이 끝나고서야 죽을 조금 드셨다.


결혼식장에 앙상해진 몸으로 한복을 곱게 입고 온 어머니를 보고 너무 울어대서 평소 나를 알던 하객들은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결혼식이 너무 빨리 끝나서 또 한 번 당황해야 했다. 지금도 참석해준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부분이다. 나를 대신해 신랑은 더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충분히 자랑할 수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지금이야 어머니도 회복되고 건강을 되찾으셨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 같드만 그래도 이래 딱 맞춰가 니가 결혼식도 다 올리고, 니가 효녀다. 느그 엄마 이제 걱정이 없겠다.


어머니와 꼭 닮은 이모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실 때, 알았다. 결혼은 두 사람을 위한 거지만, 결혼식은 가족들을 위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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