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4 – 부모가 날 결정할 수 없다

by 강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라디아서 6:5)“


진로를 고민하는 딸에게 나름 조언을 한다면서 몇 마디 건넨다.

"앞으로는 이런 것이 더 인기가 있을 거야."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야."

옷 입는 스타일도 잔소리를 하고,

뭔가 도전할 때에는 응원이나 격려보다 다칠까 봐 잔소리부터 한다.

애초부터 부모와 자식은 다른 존재임에 틀림이 없고, 각자의 삶이 있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생각하며 존중하려 애써도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를 고르지 못한다. 물론 부모가 자녀를 고르는 것도 못한다.

성격의 결, 몸의 체질, 몇몇 기질은 유전의 강을 타고 온다.

그러나 부모는 시작을 준 사람이지 대본을 쥔 감독이 아니다.

태어남은 선물이고, 그다음 장면부터는 내가 책임질 몫이 생긴다.

성인이 된다는 건 누군가가 대신 서명해 주던 칸에 내 이름을 적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가족치료에서는 이것을 종종 "분화"라고 부른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내가 나로 서는 능력.

분화가 낮을수록 우리는 칭찬에 들떠 방향을 잃고, 한 마디 비판에 무너져 주저앉는다.

분화가 자라면 공경은 유지하되 결정은 자립으로 한다.

성경은 오래전에 그 균형을 암시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창세기 2:24).


떠남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거리가 있어야 공경도 오래간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나를 해치는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모욕, 조종, 폭력, 죄책감의 끈이 걸려 있다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침범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와의 접촉 빈도, 대화 주제, 경제적 의존의 정도를 내가 설계할 권리가 있다. 때로는 “그 말은 나에게 상처가 돼. 이 주제로는 더 이야기하지 않을게.”라고 경계를 말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거리 두기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 되기도 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에베소서 6:4)는 권면은

공경의 반대가 아니라, 관계의 안전을 위한 질서다.


한편으로 우리는 쉽게 부모 탓으로 현재를 고정시킨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부모가 이혼해서… 이런 성격을 물려받아서…”

설명은 필요하지만, 설명이 면허증이 되는 순간, 삶은 멈춘다.

심리학은 이렇게 말한다.

결과를 외부, 영구, 통제불가로만 해석하면 마음은 움직일 이유를 잃는다.

반대로 “오늘의 선택은 내 손에 있다”로 문장을 고치면, 원인은 여전해도 통로가 열린다.

나는 부모가 준 강점에 감사하고, 약점은 스스로 다듬는다.

감사는 채우고, 책임은 앞으로 미는 힘이다.


관계를 단칼에 자르거나, 무조건 그대로 견디는 것도 극단이다.

울타리는 필요하지만 문이 달려 있어야 한다.

때를 분별해 열고 닫는 문.

명절에만 얼굴을 보는 거리가 어떤 집엔 최선이고,

한 달에 한 번 통화가 다른 집엔 적당하다.

어떤 집엔 상담과 중재가 필요하다.

중요한 건 내가 정한 규칙을 내가 지키는 연습이다.

스스로 만든 경계를 스스로 어기면, 마음은 다시 옛 패턴으로 끌려간다.


부모가 모든 것을 물려주었을 때도,

거의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을 때도, 우리의 숙제는 같다.

첫째, 받은 것을 이름 붙이고(선물과 부담을 구분한다),

둘째, 나의 기준으로 배치하고(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멈출지 정한다),

셋째, 오늘의 작은 선택으로 증명한다.


“이번 달엔 생활비를 내가 스스로 책임질게.”

“그 얘기는 우리 사이에서 금지어로 하자.”

“이번엔 제가 결정하고 결과도 감당해 볼게요.”


짧고 분명한 문장이 내 삶의 주어를 바꾼다.


믿음은 여기에 방향을 더한다.

“부모가 날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은 “내가 전부를 쥐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나는 주인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내 인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했고, 그분은 나에게 결정의 위임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결정은 오늘 내가 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

이건 무책임이 아니라 책임의 완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분별하고 성실하게 선택하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불가능한 임무에서 물러난다.

그래야 비로소 그 자리에 평안이 들어온다.


때때로 오래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의 기대를 껴입은 채 살아온 사람에게 벗어남은 죄책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 마음속에서 작은 리허설을 해보길 바란다.


“사랑해요. 그런데 이 결정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을 거듭 말하다 보면,

사랑과 분리가 같은 문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랑은 복종이 아니라 존중과 책임의 합이니까.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언젠가 부모가 된다(혹은 누군가의 어른이 된다).

그날을 미리 생각해 본다.

아이가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잡을 때, 나는 어떤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네가 네 삶의 주인공이 돼라. 나는 뒤에서 안전벨트를 챙기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부모의 목소리와 평화롭게 이별한 사람일 것이다.

부모는 출발선을 준다. 하나님은 방향을 주신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를 걸어가는 사람이다.

빚진 사랑은 공경으로 갚고,

해로운 것은 경계로 막고,

결정은 내 이름으로 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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