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5 – 나는 타임머신이 없다

by 강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어릴 적 극장에서 “백 투 더 퓨처”를 보고 나와서는 한동안 뒤를 자꾸 돌아봤다.

혹시 골목 어귀에 은빛 타임머신 자동차가 서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세월이 흘러 화면 속 많은 발명품이 현실이 되었지만, 끝내 오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기계.

어쩌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일부러 주지 않으신 결핍일지도 모른다.

다시 쓰기 대신 지금 쓰기를 배우라고.


그런데 마음은 늘 작은 타임머신을 만든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상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곧장 우리를 줄기째 어제로 옮겨 심는다.

심리학은 이런 생각을 ‘반사실적 사고’라 부른다.

‘만약’이라는 접속사는 가끔 교훈을 남기지만, 자주 반복되면 현재의 집중을 앗아간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면,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시간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다.

우리는 오늘의 자리에서만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도바울도 그에 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후회가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후회는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알려 주는, 사랑의 그림자일 때가 있다.

다만 그늘에 오래 앉아 있으면 빛을 잊는다.

마음속 상영관에서 같은 장면을 수십 번 반복 재생하는 대신,

나는 화면을 일시정지하고 조용히 묻는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싶었을까?

대답은 항상 분명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어제의 장면은 오늘의 이해로 조금씩 변한다.

과거는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운명은 되지 못한다.


시간을 바라보는 습관도 있다.

어떤 이들은 과거를 미화하고, 어떤 이들은 미래의 성취만 바라본다.

그러나 삶은 늘 오늘에서만 숨 쉬고, 신앙은 그 오늘을 하나님의 날로 받는 훈련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시편 118:24)이라는 고백은 감탄사가 아니다.

오늘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까지,

이 복합적인 한 날이 주의 손에서 왔고 주의 손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의 미련에 사로잡혀 현재를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내일의 불안을 내세우며 오늘을 저당 잡히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타임머신이 없다는 사실은 잔인하기보다 오히려 친절하다.

선택지가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할 수 있고, 지금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지금 감사할 수 있다.

어제의 나를 바꾸지는 못해도, 어제를 품는 오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때로는 그 태도가 애도일 수 있고, 때로는 유머일 수 있고, 때로는 침묵일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간 속에 두셨다는 것은,

우리가 ‘순간’이라는 좁은 문을 통해서만 영원을 배우게 하려는 자비인지도 모른다.


신앙은 과거와 화해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내 역사에서 사라진 장면을 복구하는 분이 아니라,

같은 장면에 다른 의미를 주시는 분이다.

인간 편에서 보면 실패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준비였던 시간들.

돌아보면 그 길이 곧게 뻗어 있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여기까지 온 발자국이 서로를 부축하고 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초대는 결과의 책임을 떠넘기라는 말이 아니라,

오늘을 신뢰의 질서에 두라는 뜻일 것이다.

맡김은 손을 놓는 게 아니라, 잡을 것을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작게 존중하려 한다.

대단한 계획 대신, 마음의 방향을 정돈하는 일로.

어제를 떠올리면 미간이 먼저 찌푸려지는 날에도,

오늘의 나에게만 할 수 있는 일을 마음속으로 불러 본다.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최소한 서툴게라도 진심이었다고 인정해 준다.

스스로에게도 같은 온도를 적용한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다시 배우려는 마음이 오늘의 값이다.

그렇게 현재에 정중해질수록, 후회는 고집을 버리고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오늘은 늘 작다. 그래서 자주 무시된다.

하지만 작은 오늘이 쌓여 우리가 말하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인생을 바꾸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바꾸는 것은 오늘의 기류다.

이 작은 기류가 오래 흘러가면, 어느 날 문득 다른 지형이 된다.


신앙은 그 변화를 ‘은혜’라고 부른다.

우리의 의지와 습관, 관계와 일상이 하나님의 손에 닿아 새로워지는 일상성.

타임머신이 없는 대신, 은혜는 매일 새롭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 3:23).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다짐이 공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짧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게 하소서.”


이 한 줄이 나를 현재로 불러낸다.

어제는 이미 완성된 문장이고, 내일은 아직 빈 페이지다.

우리가 손댈 수 있는 건 오직 지금 쓰는 한 줄 뿐이다.

그 한 줄이 모여 문단이 되고, 장이 되고, 결국 한 권의 책이 된다.


타임머신은 없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문은 늘 앞에 열려 있다.

뒤돌아보는 회상은 때가 되면 조용히 덮고, 눈앞의 문지방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정하신 이 날을 내 것으로 살겠다는 결심,

그 결심이 우리의 시간을 선물로 바꾼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후회보다 평안이 조금 더 많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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