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도서 3:7)
단체 채팅창에서 짧은 문장이 날아왔다.
애매하게 비꼰 농담. 손가락은 이미 자판 위에 올랐고, 반박 한 줄이 반짝거렸다.
그때 화면 구석의 점 세 개—상대가 입력 중—을 보다가 문득 멈췄다.
메시지를 지우고 휴대폰을 뒤집었다.
그날 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에게서 “어제 건 내가 과했어. 미안”이라는 메시지가 왔다.
침묵이 관계를 구할 때가 있다.
우리는 말을 사랑한다. 설명하고, 해명하고, 바로잡고 싶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하지 않는 말이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 준다.
성경은 이 단순한 지혜를 오래전부터 가르쳤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0:19).
예수님도 억울한 재판 앞에서 때로 잠잠하셨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침묵은 도망이 아니다.
침묵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생기는 작은 방이다.
그 방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말이 사람을 살릴까, 아니면 나를 지키려는 급한 방어일까?
잠깐의 고요가 지나가면,
어제까지 ‘정의감’으로 보였던 말들에서 자존심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한다.
침묵은 그 그림자를 들여다볼 시간을 선물한다.
감정이 치솟을 때 뇌는 방어 태세로 좁아진다.
그때는 옳은 말을 해도 옳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 연구는 말한다.
감정이 범람할 때는 논쟁을 이어가기보다 잠시 멈춤이 낫다고.
10초의 숨 고르기, 몇 분의 침묵만으로도 마음은 다시 사람을 볼 수 있다.
유명한 말처럼,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우리의 자유가 자란다.”
침묵은 그 자유를 넓혀 준다.
침묵은 사랑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더듬더듬 자기 잘못을 털어놓을 때,
부모의 훈계가 너무 빠르면 아이는 입을 닫는다.
그러나 잠깐의 침묵으로 끝까지 듣는 부모 앞에서 아이는 스스로 결론에 도달한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백 마디 훈계보다, 아이가 스스로 말한 한 마디가 오래간다.
배우자와 동료도 다르지 않다.
내 말이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듣는 침묵이 상대를 스스로 보게 한다.
물론 침묵이 늘 답은 아니다. 침묵이 회피가 될 때가 있다.
해야 할 사과를 미루고, 불의를 방치하는 침묵은 용기가 아니다.
성경은 “말할 때가 있다”고도 말한다(전도서 3:7).
그러나 우리가 더 자주 실패하는 쪽은 대개 말이 빠른 쪽이다.
말로 덮어야 마음이 덜 불안해 보이지만, 많은 경우 말은 기름을 붓는다.
그럴 때 침묵은 믿음의 행동이 된다.
“주여, 나의 입술을 지키소서”(시편 141:3).
내가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지 않고, 하나님께 일하실 여백을 드리는 일.
침묵은 변명보다 깊다.
변명은 사실을 고친다. 침묵은 마음을 고친다.
“네 말이 옳다”를 얻는 대신 “네 마음이 내게로 돌아왔다”를 얻는 길.
때로는 다음 날, 아주 짧은 문장으로 침묵이 완성된다.
“어제는 내가 성급했어. 미안해.”
이 한 줄은 어젯밤의 침묵을 책임으로 바꾼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더 나은 말을 준비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결심을 자주 잃어버린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짧은 약속을 걸어 둔다.
분노가 올라오면 한 번은 삼키자.
누군가의 허물을 발견하면, 오늘은 먼저 기도하자.
칭찬은 바로 말하고, 훈계는 하룻밤 재우자.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작은 침묵들이 하루의 톤을 바꾼다.
말수는 줄어도 존중은 늘고, 설명은 줄어도 신뢰는 쌓인다.
무엇보다, 침묵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신앙을 배운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시편 62:1).
결과를 조급히 말로 끌어오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는 용기.
그 기다림이 때로는 기적처럼 상황을 바꾸고, 때로는 조용히 내 마음을 바꾼다.
어느 쪽이든 침묵은 빈손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려 할 때,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려 보자.
지금은 말보다 사랑을 지키는 시간.
그러면 놀랍게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실제로 지켜진다.
한 사람의 체면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나의 주장보다, 우리의 평안이.
말보다 먼저 오는 침묵이, 우리의 선택을 새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