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언 19:21)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의자가 잔잔히 떨렸다.
화면의 항로는 곧게 뻗어 있었지만, 실제 하늘은 자꾸 울퉁불퉁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두 가지뿐이었다.
벨트를 매고, 창밖을 맡기는 것.
조종간은 내 손에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자기 결정은 모든 걸 쥐는 기술이 아니라,
쥘 것과 맡길 것을 나누는 지혜구나.
우리는 흔히 더 많은 조작으로 불안을 낮추려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 번 누르고,
날씨 앱을 다섯 번 새로고침하고,
회의 전날 밤까지 메모를 고치고 또 고친다.
심리학자 엘렌 랭어는 이것을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불렀다.
우연의 영역에까지 내 능력이 미친다고 느끼는 착시.
착시는 뇌에 위안을 주지만, 오래 가면 마음을 소진시킨다.
우리가 바꾸지 못하는 바람과 파도를 내 탓으로 여길 때, 불안은 끝이 없다.
믿음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선다”(잠언 19:21).
이 말은 계획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계획을 하되, 결과는 주께 맡기라는 초대다.
솔로몬의 전도서는
“바람만 살피는 자는 뿌리지 못하고,
구름만 보는 자는 거두지 못한다”라고 했다(전도서 11:4–6).
바람을 멈출 수는 없지만, 씨를 뿌리는 일은 오늘 내 몫이다.
믿음은 준비와 맡김을 동시에 배운다.
밭은 갈되, 비는 간구한다.
나는 요즘 준비의 자리에 작은 지혜를 더한다.
어떤 일이 벌어진 뒤에 이유를 찾는 대신, 일어나기 전에 이유를 상상하는 것.
연구자 게리 클라인은 이를 “프리모텀(premortem)”이라 불렀다.
“만약 이 계획이 실패했다면, 무엇 때문일까?”를 미리 묻는 연습.
이 질문은 조바심이 아니라 겸손한 대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쪽(시간·사람·자원·리스크)을 정직하게 손질하고,
그 너머는 담대히 맡긴다.
계획은 사람의 것, 인도는 하나님의 것.
이 문장이 중심을 잡아 준다.
문제는 마음이 자꾸 조종간을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짧은 기도를 배웠다.
“주님,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고,
할 수 없는 것을 맡기게 하소서.
둘을 구별할 지혜를 주소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55:22)
이 기도는 체념이 아니다.
내가 감당할 일을 더 선명히 보게 만들어 준다.
전화를 먼저 걸고, 약속을 조정하고,
안전벨트를 매고, 자료를 미리 공유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했으면, 새로고침을 멈춘다.
불안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된다.
통제를 내려놓는 일은 때로 자존심을 건드린다.
“내가 못해서 망하면 어쩌지?”
그러나 믿음은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내가 다 해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 해서만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실을 사용하시되,
은혜로 완성하신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이렇게 정리한다.
준비는 철저히, 마음은 가볍게.
씨를 뿌리고, 날씨는 맡긴다.
벨트를 매고, 난기류는 맡긴다.
정직하게 계획하고,
“주께서 허락하시면”을 마음의 여백에 적어 둔다.
결국 자기 결정의 마지막 챕터는 주권을 인정하는 자유다.
모든 걸 쥐려는 손은 굳어 가지만,
쥘 것만 쥔 손은 다른 이를 붙들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할 말과 표정과 작은 성실, 그건 우리의 몫이다.
그 결과가 빚어낼 내일, 그건 하나님의 영역이다.
이 간단한 경계가 영혼을 지킨다.
그리고 어느 날 뒤돌아보면,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내가 길을 만들지 않았지만, 인도는 분명했다.”
바람은 여전했으나,
그 바람 속에서 걸을 수 있는 발걸음은 날마다 더 단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