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1 – 난 널 바꿀 수 없다

by 강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린도전서 3:6)


“저 인간, 내가 가만 안 놔둔다.”

마음속에서 이런 문장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애정이 많을수록 더 그렇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듬고, 지도하고, 바로잡고 싶어진다. 그런데 정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내 마음조차 하루아침에 못 바꾸는 사람"이다. 잠자기 전 다짐 하나도 내일 아침이면 흔들리는데, 어떻게 타인의 방향타를 내 손으로 돌리려 하는가.


심리학은 이 지점에 간단한 이름을 붙였다.

"심리적 반발(reactance)"

누군가가 나를 몰아붙일수록, 내 안에서는 그 말을 거스르고 싶다는 충동이 더 커진다.

역설적으로, “고치겠다”는 강한 의도는 상대의 자유를 위협하고, 그래서 변화는 멀어진다.

결국 바뀌는 사람은, 스스로 바꾸기로 결심한 사람뿐이다.


신앙은 더 또렷하게 말해 준다. 우리는 성령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심고, 물 주는 것까지이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서 3:6-7).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의 등을 억지로 잡아끌지 않으셨다. 그가 “근심하며” 떠날 때, 떠나도록 놓아두셨다(마태복음 19:22).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존중과 자유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변화의 뿌리는 종종 책망보다 인자하심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로 인도하신다.


“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로마서 2:4).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먼저, 시선을 거둬 내 안으로 돌린다.

상대의 티를 보느라 내 눈의 들보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은, 관계의 첫 단추를 정확히 꿴다(마태복음 7:3).

내가 말하는 방식, 무심코 내비친 표정, 경청보다 앞선 충고, 이 작은 결들이 관계의 온도를 정한다.

다른 이의 고집 앞에서 내가 더 부드러워질 때, 관계 전체의 긴장이 한 끗 낮아진다. 변화는 종종 그 한 끗에서 시작된다.


다음으로, 자유를 전제한 말을 배우자.

“넌 반드시…”가 아니라 “네가 원한다면, 나는 이렇게 보였어.”

“왜 또 그러니”가 아니라 “네가 그 선택을 할 때 마음은 어땠어?”

질문은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초대하는 문장이다. 상대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 때, 변화의 싹은 안쪽에서 튀어 오른다. 우리는 문을 열어 둘 뿐,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맡긴다. 맡김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의 다른 이름이다.

기도는 상대를 내 방식으로 바꾸어 달라는 주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간구다.

불편하면 경계를 세울 수도 있다. 사랑과 경계는 적이 아니다. 내 존엄을 보존하는 경계가 있어야, 상대의 존엄도 존중할 힘이 남는다.


결국 “난 널 바꿀 수 없다”는 문장은 차가운 선포가 아니다. 이렇게 이어져야 한다.

“그래도 나는 곁에 있을게. 진실을 말하되 부드럽게,

자유를 주되 책임을 요청하며, 무엇보다 너를 하나님께 맡길게.”


변화는 소유물이 아니라 선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선물이 내려앉을 자리를 정성껏 비워 두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나를 바꾼다. 언어를, 표정을, 기도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자라게 하시는 분이, 조용히 자라나게 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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