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8 – 결심은 작게, 반복은 길게

by 강훈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스가랴 4:10)


월요일 아침마다 거대한 결심을 써 본 적이 있다.

새벽 기상, 식단 개편, 성경 읽기, 운동 루틴…

첫날엔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다가, 수요일 즈음엔 종이가 나를 비웃는다.

나는 어느 날부터 ‘큰 결심’ 대신 ‘짧은 약속’을 택했다.

전기포트가 딸깍 소리를 내면 10초 동안 감사 한 줄을 속삭이고,

현관문을 닫을 때 오늘 만날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축복을 건넨다.

대단하진 않다. 다만 작게, 오래 하기로 했다.


심리학은 이런 방식을 '실행의도'라고 부른다.

결심을 의지와 기분에 맡기지 않고, 구체적인 신호에 묶는 법이다


“만약(If) 어떤 신호가 오면, 그때(Then) 무언가를 하겠다.”


아침 알람이 울리면 오늘 하루를 주심에 감사기도를 하고,

식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물 한 잔을 마시며

오늘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식이다.

의지는 배터리처럼 닳지만, 신호는 언제나 제시간에 온다.

그래서 큰 각오 대신 작은 자동화가 우리를 앞으로 밀어준다.


신앙은 이 작은 법을 지지한다.

하나님은 폭죽 같은 결심보다,

등잔불을 꺼뜨리지 않는 손을 기뻐하신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 충성”한다는 약속은,

거대한 성공을 보장한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성실이 사람을 만든다는 진리를 가리킨다(누가복음 16:10).

광야에서 만나도 하루치씩만 내리셨다.

내일 몫을 쌓아 두지 않고,

오늘의 양식으로 오늘을 살게 하셨다(출애굽기 16:4).

그러니 ‘일 년 치 결심’보다 ‘하루치 순종’이 더 성경적이다.


결심의 값어치는 양이 아니라 반복의 길이에 있다.

겨울마다 강을 깎아 만든 협곡처럼, 작은 물줄기가 시간이 되어 모양을 만든다.

믿음도 그렇게 자란다.

별일 없는 날의 짧은 기도,

눈 마주치며 건네는 “고마워요”,

스마트폰을 뒤집고 갖는 2분의 침묵.

아무도 박수 치지 않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만든다.


물론 삶에는 예외가 많다.

아이가 아프고, 일이 몰리고, 마음이 비어 있는 날.

그럴수록 약속은 더 짧고 가벼워져야 한다.

“알람이 울리면 성경 한 구절만.”

“문 손잡이를 잡을 때 ‘오늘도 주와 함께’ 한 번.”

목표는 완벽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자존감을 키우고, 자존감은 다음 작은 걸음을 감당하게 한다.

그다음에는 자연스레 하나가 더 붙는다.

짧은 약속이 리듬이 되고, 리듬이 삶의 톤을 만든다.


나는 이제 거창한 각오 대신 이런 문장을 마음에 붙여 둔다.

“주님, 오늘 제 몫의 작은 성실을 하겠습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깁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성취로 나를 증명하려는 불안이 줄어든다.

작은 순종들이 하루를 채우면, 그날은 이상하게도 넉넉한 날이 된다.

내 힘으로 불을 지피지 않아도, 등잔은 저절로 따뜻해진다.


결심은 작게, 반복은 길게.

하나님 나라의 속도는 보통 이렇다.

씨앗만한 약속이 계절을 건너 숲이 되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의 충성이 어느 날 문득 사람의 품격이 된다.

타임라인의 박수를 기다리지 말고, 오늘의 신호에 마음을 묶어 두자.

전기포트의 딸깍 소리, 엘리베이터의 종, 문고리의 감촉,

이 모두가 은혜의 종소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해를 걷고 나면, 돌아보는 말은 아마 이럴 것이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처는 분명할 것이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충성.

내가 만든 불꽃이 아니라, 하루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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