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가 가르친 은혜의 해석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린도후서 4:6).
둘째가 묻는다.
“아빠, 오로라 보러 가고 싶다며? 왜 그렇게 보고 싶어?”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했다.
“응, 아주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면 그때에나 갈 거야.
그리고 왜 보고 싶냐면, 오로라가 잘못 태어난 빛처럼 보여서 더 보고 싶어.”
아이의 얼굴이 갸웃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오로라는 ‘잘못’이 아니다.
태양에서 온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와 부딪치면서,
질소와 산소가 다른 빛깔로 깨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질서 바깥’에서 태어난 빛처럼 느껴진다.
평온한 하늘이 잠시 어긋날 때, 도리어 더 찬란해지는 것.
흠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흠집 사이로 스며드는 광채. 그래서 오로라가 좋다.
나도 그런 빛을 삶에서 보고 싶다. 틈과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도, 그 사이로 흘러드는 영광.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에서 몇 장면을 감추고 싶어 한다.
못난 계절, 지워버리고 싶은 대사들. 나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둘째가 또 묻는다.
“근데, 왜 그렇게까지 보고 싶어?”
나는 조금 더 길게 대답했다.
오로라는 정상이 아닐 때 더 잘 보인다.
세상이 흐트러지는 밤, 태양풍이 몰아치는 시간,
그때 하늘은 갑자기 푸른빛과 보랏빛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장면이 하나님 나라의 언어 같다고 느낀다.
어둠에서 빛을 부르시던 그 첫 명령이,
여전히 세상과 내 마음에서 유효하다는 증거.
“캄캄해도, 빛이 길을 안다”(시편 139:12).
심리학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 연구자 댄 맥아담스(Dan P. McAdams)는 사람들의 삶 속에
"구원 서사(redemption sequence)"가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추락에서 일어섬, 상실에서 헌신으로, 수치에서 의미로.
상처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해석이 바뀌어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신앙은 여기에 더 깊은 이유를 덧붙인다.
우리가 해석을 바꿀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이미 의미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재를 대신하여 화관을 주시며… 근심의 옷을 찬송의 옷으로 갈아입히신다”(이사야 61:3).
그래서 우리는 상처를 미화하지 않고도 아름다움의 자리로 데려갈 수 있다.
나는 오로라를 보러 가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매일 작은 오로라들을 본다.
자라나며 비틀거리는 아이의 솔직함에,
내 잘못을 받아들이고 사과하는 한 문장에,
오래 묵힌 서운함 대신 건네는 따뜻한 눈빛에.
빛은 늘 자격 없는 자리에서 더 또렷해진다.
“그들의 얼굴은 광채가 나고 그들의 낯이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4:5).
수치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분의 시선이 우리를 덮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밤에는 하늘이 전혀 열리지 않는다.
구름은 두껍고, 예보는 엇갈리고, 비행 편은 미뤄진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빛은 나의 성과가 아니라 은혜다.'
내가 올려다볼 책임은 있지만, 빛을 켜는 권한은 내게 없다.
그 고백을 드린 뒤에야,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다시 붙든다.
아이의 질문을 끝까지 들어주고, 오늘의 양식을 감사로 받고, 내 몫의 정직을 지키는 일.
빛은 때로 찾아오지 않지만, 빛을 기다리는 자세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편 27:14).
아마 아이들이 독립하고, 난 은퇴한 이후, 그쯤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같이 가자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어떨지 모르겠다.
혼자라도 갈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혼자 가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북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뿐 아니라,
지금부터 계속해서 오로라를 볼 것이다.
“내 가족의 얼굴에서, 내 상처에서, 우리가 서로를 다시 믿기로 한 순간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흠 없이 만드는 분이라기보다, 흠을 통과해 빛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우리가 자꾸 숨기던 페이지를 펼쳐 들 때, 그분은 그 위에 빛을 덧칠하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게 결심한다.
흠 없는 낮을 꿈 꾸기보다, 빛이 스며드는 밤을 배우겠다고.
오로라는 사실 잘못 태어난 빛이 아니라, 어긋남 속에서 드러나는 질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은혜가 지나가서 아름다운 것이다.
언젠가 진짜 오로라를 보러 떠날 때,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하늘,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네 마음에도 켜 두신 빛이야.”
그리고 그렇게 덧붙일 것이다.
“그러니, 빛나자. 어둠 속에서,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