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5 - 뷔페는 한 번에 조금씩 여러 번?

by 강훈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언 18:13)


똑같은 일을 겪어도 받아들이는 건 늘 다르다. 여유 있을 땐 난폭 운전을 보면 “왜 저래” 싶다가, 내가 급한 날엔 내가 바로 그 “왜 저래”가 된다. 눈도 마찬가지다. 어린 날엔 축복이었고, 사랑 중엔 낭만이었고, 군대에선 치워야 할 하얀 쓰레기였다. 사정이 바뀌면 해석도 바뀐다.


뷔페식당에서 한 접시에 이것저것을 잔뜩 담아 오시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오래도록 속으로 답답해했다. 섞이면 맛도 흐려지는데, 왜 굳이… 여러 번 가면 되잖아.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자 장면이 달라 보였다. 사람 많은 곳에서 줄을 서는 게 부담이 되고, 메뉴 앞에서 오래 고르는 일도 은근히 에너지가 들고, 먹는 양보다 소화할 힘을 먼저 세게 된다. 한 번에 담아 오는 건 대충이 아니라, 오늘의 몸과 마음에 맞춘 속도일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접시만 보고 결론을 내렸다. 잠언은 말한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건 미련”이라고(잠언 18:13). 접시는 늘 사연을 들고 다닌다. 여기엔 무릎이 시큰한 사람의 걸음이 있고, 북적임이 어려운 사람의 숨이 있고, 집에 두고 온 근심 하나가 조용히 실려 있다. 그 사연을 듣기도 전에 나는 내 기준으로 답을 내리고 있었다.


공감은 동의와 다르다. “그렇게 먹어야 한다”는 합의가 아니라, 잠깐 그 자리에 서 보려는 마음이다. 접시를 들고 무리 사이를 지나가며, 흘릴까 조심하는 손의 긴장, 빈자리 찾으며 뒤를 몇 번 돌아보는 어깨의 습관. 그 몇 걸음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판단이 한 톤 낮아진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면, 우리 주님은 우리 편에 서 보신 분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이가 아니요”(히브리서 4:15).

하나님조차 우리 입장 안으로 들어오셨다면, 나는 내 자리에서 한 발쯤 물러서 타인의 사정을 들어볼 수 있겠다.


이제는 내 접시도 가끔 산이 된다. 예전 같으면 디저트 포함 서너 번이 기본이었지만, 이제는 디저트까지 다른 음식들과 섞이도록 한 번에 끝내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바라보고, 옆자리의 접시를 흘끗 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저 접시에도 오늘의 사연이 있겠지. 그렇게 마음이 느슨해지면, 서로의 접시가 취향이 아니라 이야기로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깨닫는다. 우리가 자주 하는 오해는, 그 자리에 서 보지 못해서 생긴다. 그리고 그 오해는 생각보다 작은 틈에서 풀린다. 한 박자 늦게 보는 눈, 한 걸음 옆으로 서는 마음. 다음에 뷔페에서 산처럼 담긴 접시를 만나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천천히 당신의 페이스대로. 맛있게 드세요.


모든 일에는, 그리고 모든 관계에는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당연한 거다. 그 당연함을 오늘도 다시 돌아보고 배운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도 다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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