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로새서 4:6)
배송이 멈춘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은 불만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음은 벌써 몇 번의 반박을 연습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상담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고객이 되어 보자.
이상하게도 그 마음 하나가 목소리의 온도를 바꿨다.
“지난주에 주문했는데 아직 출발이 안 되었네요. 혹시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담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고, 나는 “괜찮습니다. 바쁠 수 있죠”라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이틀 뒤 물건이 도착했다.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진 걸까? 사실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품위를 지킨 그 감각이 더 오래 남았다.
VIP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날 내가 배운 건 조금 달랐다.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VIP라는 것. 내 말이 공기를 결정할 때가 있다. 바쁜 창구, 피곤한 목소리, 매끄럽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도, 은혜가 묻은 말 한 줄이 그날의 톤을 바꾼다(골로새서 4:6). 반드시 해결책을 당겨오지는 못해도, 서로의 마음을 버리지 않게 하는 힘은 있다.
한때 보험 영업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폭탄 같은 하루에도 단 한 명, 좋은 사람을 만나면 삶이 괜히 덜 거칠어졌다.
“고생 많으시네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그 두 문장이 계약을 성사시키지는 않아도, 마음을 열게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런 고객 앞에서 나는 그분을 더 VIP처럼 모시게 됐다. 먼저 친절한 사람이 결국 더 큰 친절을 받곤 한다. 심리학이야 이름을 붙이겠지만, 신앙의 언어로 말하면 그냥 씨 뿌린 대로 거두는 삶의 결이다. 좋은 씨를 뿌리면 열매를 30배, 60배, 100배를 거둔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열매보다 사랑의 열매, 친절의 열매가 그러하리라.
가끔 우리는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오해한다. 왕처럼 대접받아야 한다는 뜻으로만 들을 때, 말은 쉽게 날카로워지고 표정은 쉽게 굳어진다. 하지만 복음은 다른 왕의 길을 보여준다. 섬김을 받으려 하기보다 섬기려는 마음(마가복음 10:45),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권면(빌립보서 2:3). 기독교적 VIP는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다.
식당에서 손을 높이 들고 호통 치는 대신, 물컵을 건네며 “수고 많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 계산대에서 한 박자 늦게 불평 대신 “고맙습니다”를 남기는 사람. 기도는 때때로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말의 온도로 증언된다.
물론 우리도 사람이라 마음이 삐걱거릴 때가 있다. 억울할 때가 있고, 서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에서 아주 짧게 숨을 고른다. 주님, 제 입술을 지켜 주세요. 그 한숨의 기도가 나를 승자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증인으로 세워 준다. 내가 믿는 복음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사람, 굳이 설교하지 않아도, 대화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사람.
돌아보면, 그날 배송이 빨리 온 건 부수적이었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조금 넉넉해졌다는 사실이다. 전화를 받은 그분도, 전화를 건 나도, 서로의 하루를 덜 소모했다. 어쩌면 VIP는 선택받는 호칭이 아니라, 오늘 내가 선택하는 태도인지 모른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하루에 초대된 손님이다. 어떤 손님이 될까?”
아마도 하늘의 장부에는 이런 상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좋은 손님.”
상금도, 박수도 없지만,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가 기억하시는 표정(마태복음 6:4). 그 기억 하나면 충분하다. 다음 통화에서도, 다음 계산대에서도, 우리는 다시 마음을 고른다.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을 만들어 주는 사람으로. 그렇게 하루가 조금씩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