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그날도 의자에 앉아 망토를 두르고 거울을 마주했다. 능숙한 손이 빗으로 결을 세우고, 가위가 공기 속에서 얇은 소리를 냈다. 뒤편에는 막 입사한 듯한 스텝이 서 있었다. 바닥을 쓸고, 드라이어를 건네고, 때가 되자 조심스레 샴푸대에서 내 머리를 감겨 주었다. 눈을 감으니 손끝의 성실이 전해졌다. 보이지 않는데도 정성은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정말 좋은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웃었다.
“정말요?”
“남의 머리를 만지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잖아요.
더구나 누군가를 멋있고 빛나게 만들어 주는 일이잖아요. 정말 멋진 일이죠.”
말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마음이 환해졌다.
누군가를 아름답게 가꾸어서 보내는 이 자리. 머리칼이 어깨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한 사람의 요즘 삶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헤어 디자이너의 손은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까지 다듬어 주곤 한다.
“오늘 잘 됐네요”라는 짧은 한 마디가 어떤 사람에겐 하루의 무게를 바꾼다.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셨으니(마태복음 10:30), 어쩌면 그분의 세심하심이 이들의 손끝을 통해 조금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샴푸대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늘 생각난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밤을. 몸의 가장 낮은 곳을 어루만지며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다”라고 하신 그 장면(요한복음 13:14–15). 헤어 살롱의 물소리와 거품, 따뜻한 손바닥은 내게 그 밤의 마음을 떠오르게 한다.
섬김이란, 누군가가 자신을 안전하게 내어 맡길 수 있게 만드는 배려구나.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친절, 설득보다 먼저 닿는 온기. 그래서 이 직업이 특별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람의 머리를 받쳐 든다는 건, 신뢰의 무게를 그만큼 조심히 들고 있는 일이니까.
우리는 미용실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부르긴 한다. “미용실 언니”, 그나마 괜찮게 부르는 건 "미용실 원장님"이다. 그래도 나쁜 말은 아니지만, 내가 돈을 주고 머리에 관련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 내 머리를 맡긴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다. 일부의 경우이지만 TV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는 사람들을 보거나,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볼 때면, 거의 대부분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앉아 있는 사람에게 굽신거리거나 어려워한다. 세상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더 큰 일이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살면서 배운 건 이거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이 가장 빛나는 일이라는 것.
심리학에서도 같은 일을 놓고 태도가 다르면 의미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직업”, 어떤 이는 “일”, 또 어떤 이는 “소명”으로 본다. 같은 가위를 들어도, 누군가는 시간을 자르고, 누군가는 한 사람의 자존감을 세운다. 의미의 방향을 바꾸는 건 기술보다 마음이다.
그날 나는 작은 약속을 했다.
“언젠가 첫 커트 손님이 필요하면 저를 불러 주세요. 처음의 떨림을 같이 기억해 드릴게요.”
그녀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내 머리 모양보다 훨씬 오래갔다. 누군가에게 “너의 일이 귀하다”라고 말해 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달라진다.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만드실 때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이름 붙이셨던 것처럼(창세기 1:31), 우리가 오늘 서로의 일에 “좋다”라고 불러 주는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하루를 창조처럼 다시 여는 힘이 있다.
살다 보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툴다. 모서리가 남고, 길이 삐뚤고, 때론 마음이 엉킨다. 그래서 더 고마운 직업들이 있다. 헤어 디자이너처럼, 엉킨 것을 풀어 주는 사람들. 그 손이 있어 우리는 거울 앞에서 조금 더 용기를 얻고, 다시 밖에 나가 하루를 만난다. 큰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 보이게 해 주었기 때문에. 거울 속 내가 괜찮아 보이면, 거울 밖의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다정해진다. 한 사람의 손끝이 여럿의 마음까지 닿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치 있는 직업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건 아닐지 모른다. 가치는 누가 그 일을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서 드러난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할 때 평범한 일도 고요하게 거룩해진다(골로새서 3:23). 빵을 굽는 이의 새벽도, 환자를 돌보는 이의 밤도, 머리를 다듬는 이의 오후도, 그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한 편의 예배가 될 수 있다. 직업이 사람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랑이 직업을 높인다.
다음번 미용실 예약 문자를 받고 문득 미소가 났다. 머리 모양을 고치러 가는 길이지만, 사실은 마음을 다듬으러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받쳐 들 것이고, 나는 그 손에 하루를 잠시 맡길 것이다. 의자에서 내려와 거울 앞을 떠날 때, 속으로 이렇게 한 줄 기도를 남긴다. 주님, 이 손들을 축복 해 주세요. 이 손에 만나는 모든 얼굴이 더 빛나게 하소서.
세상에 위대한 직업은 이미 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모든 일이 그렇다. 그리고 헤어 디자이너는 그 이름을 가장 가까이, 가장 아름답게 증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