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마트 통로 한가운데, 작은 몸이 길게 누웠다. 발이 허공을 차고, 바닥이 북을 대신했다. 장바구니 손잡이가 축 늘어지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어른이고 아이는 세상 전체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하고 한숨이 올라오지만, 가만히 보면 그 장면은 하나의 문장처럼 들린다.
“지금 나, 사랑이 안전한지 확인 중이야.”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필요를 위해 말하기 시작한다. 배가 고프면 울고, 젖을 먹으면 잠든다. 누군가 채워 주면 몸이 풀리고, 그 채워짐을 통해 “나는 버려지지 않았다”를 배운다. 그러다 조금 더 자라면, 필요의 언어가 조금 변한다. 사탕 하나, 장난감 하나.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야 나중에”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게 내 사랑의 증거”가 된다. 갓난아기 때부터 채워짐이 곧 안전이라는 것을 경험해 왔기에, 손에서 사라지는 그 ‘작은 것’이 곧 사랑이 미뤄지는 신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채워 주는 사랑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의 손은 세상의 첫 번째 포크이자 담요였고, 그 손으로 아이는 살아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랑의 문장을 같이 배워야 한다. “가져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에 괜찮다.” 결핍의 반대말은 채움이 아니라 충분함이다. 더 보태어 꽉 채워야만 하는 상태가 아니라, 설령 지금은 비어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리. 목자가 곁에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확신(시편 23:1)이 아이의 일상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아이에게 그 언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못하던 때, 아이는 존재만으로 칭찬을 받았다. “잘 잔다, 잘 웃는다, 잘 싼다” 그런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어른들 표정이 환해지고, 집안의 공기가 사르르 풀리던 순간들. 아이는 그때 배웠다. 내가 있으면 기쁨이 온다. 그래서 나중에 뭔가 잘 못했을 때, 성과로 사랑을 되찾으려 애쓰는 대신, 다시 그 첫 문장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괜찮아. 흘렸네? 닦으면 돼. 오늘 너는 이미 충분해.” 실수를 지워서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 지워지지 않아도 사랑이 머무는 자리가 있다는 걸 함께 확인해 주는 일.
믿음의 세계도 그렇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하늘에서 먼저 들려온 목소리는 “이를 행하라”가 아니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마가복음 1:11). 아직 아무 성과가 없을 때, 이미 사랑의 이름이 주어졌다. 그 이름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중력이 된다. 아이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가끔은 그 이름을 다시 불러 줘야 한다. “사랑받는 사람아, 오늘 너는 충분하다.” 그러면 손아귀에 힘주어 쥐고 있던 사소한 것들이, 조금은 쉽게 놓일 때가 있다.
그래서 마트의 바닥에 누운 아이를 볼 때, 나는 서둘러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는다. 그 장면은 버릇없는 한 컷이 아니라, 결핍을 두려워하는 작은 가슴의 신호일지 모른다. 어떤 날은 사탕 대신 곁을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은 아니야. 그래도 우린 괜찮아.” 그 말이 거래의 문장이 되지 않도록, 손을 잡아 온도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우유 한 잔을 함께 마신다. 아이가 진정되면, 조용히 이렇게도 말해 본다. “OO야, 아빠(엄마)는 네가 있어서 좋아. 네가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사랑을 주는 존재로 아이를 불러 주는 그 호명 속에서, 아이는 자기 존재가 누군가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운다.
물론 모든 떼쓰기의 이유가 한 가지일 수는 없다. 때로는 피곤하고, 배가 고프고, 잠이 부족해서다. 우리도 그렇다. 어른들도 마음이 흔들리면 쇼핑카트 옆에서 보이지 않게 드러눕고 싶다. 그러니 그 장면 앞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훈육의 기술이 아니라 공감의 숨일지 모른다. 나도 그럴 때가 있지. 이 한숨이 지나가면, 아이의 울음도 조금은 사람의 소리로 들린다.
아이가 오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충분함을 맛본다면, 내일의 원하는 것들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배우는 중이다. 사랑을 가진 손에서 시작해, 사랑이 쉴 곳을 만드는 법까지. 그 길 위에서 가끔 바닥을 치는 소리가 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품에 눕혀 잠잠히 쉬게 하신다(스바냐 3:17).
마트의 소음이 가라앉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는 어느새 잊고 다른 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 등을 토닥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충분함을 기억하는 어른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알게 된다. 오늘 장보기의 가장 귀한 품목은, 장난감도 간식도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준 충분함의 온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