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9 - 평범하면 실패다?

by 강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누가복음 16:10)


세상은 “특별”을 외친다. 남들보다 빨리, 더 크게, 더 화려하게. 그래서 평범하게 성실한 하루는 실패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예수님은 방향을 거꾸로 돌린다. 큰 일을 부탁하기 전에 “지극히 작은 것”을 본다. 하늘의 질서는 화려함이 아니라 충성의 깊이로 사람을 본다.


나도 소리 나는 성취를 좋아했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프로젝트를 ‘빵’ 터뜨리는 일. 그런데 마음이 비어 갈 때가 있었다. 그때 배운 하루의 질서는 이런 것들이었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말씀을 펼치고, 가족보다 5분 먼저 일어나 커피포트를 올리고, 퇴근 전에 받은 메일함을 비우고, 아이가 잠든 뒤 싱크대의 마지막 물기를 닦는 것. 결과를 크게 바꾸지 않는 제스처 같지만, 이상하게도 영혼이 정돈된다. 조용한 반복이 나를 만들어 간다.


심리학은 이런 “작은 충성”의 힘을 설명해 준다. 칼 바이크(Karl E. Weick)의 "스몰 윈즈(small wins)". 거대한 목표 대신 작은 승리를 반복할 때, 사람은 현실적 희망과 추진력을 얻는다. 데시와 라이언(Edward Deci & Richard Ryan)의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도 곁에 선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율성(내가 선택했다), 유능감(할 수 있다), 관계성(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이 채워질 때 만족감과 지속력이 올라간다. 평범한 반복은 이 세 가지를 가장 빠짐없이 공급하는 ‘영혼의 식사’다. 또 마이클 노튼과 댄 애리얼리(Michael I. Norton, Dan Ariely)가 말한 "아이케아 효과(IKEA effect)"처럼, 손을 얹은 만큼 애정이 붙는다. 그릇을 정갈히 포갠 부엌, 날짜를 적어 둔 기도 노트, 내 수고가 밴 평범함은 값이 오른다.


신학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가 말한 "사소한 예전(liturgies)". 우리는 반복하는 습관대로 사랑하게 된다. 예배도 그렇고, 주중의 작은 몸짓도 그렇다. 또한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Practicing the Presence of God)”을 기억한다. 부엌에서 냄비를 닦는 순간에도, 수도원 예배당에서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숨 쉬듯 반복되는 일들이 하나님 사랑의 언어가 된다.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팀의 막내가 맡은 건 주로 ‘사소한 일들’이었다. 회의실 세팅, 프린터 막힘 해결, 보고서 표지 정리. 예전의 나는 이게 ‘재능 낭비’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정말 바쁜 날 아침이었다. 팀의 막내가 미리 자료들을 준비해 준 덕에 회의 시간을 잘 지킬 수 있었다. 난 막내를 칭찬했다. 그리고 재능 낭비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막내에게 "네 헌신 덕분에 회의를 잘 마칠 수 있었어."라고 말해줬다. 별말 아닌데, 마음 어딘가가 딱 맞물렸다. 충성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구나. 사람이 보든 말든, 주님을 향해 하는 것(골로새서 3:23) 그 자체가 결과였다.


평범함은 실패가 아니다. 평범함은 하나님과 오래 걷는 형식이다. 오늘도 같은 시간에 말씀을 펴고, 같은 자리에서 작은 선을 반복하자. ‘특별’은 소문으로 오지만, ‘거룩’은 습관으로 자란다. 하늘의 회계는 박수의 데시벨이 아니라, 조용한 충성의 일수를 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