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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May 23. 2022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이다

뭐든지 선을 넘으면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

 물론 우리는 속옷을 겉에 입는 사람을 알고 있긴 하다. 미국에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클라크 씨 말이다. 그에겐 너무 미안한 표현이긴 하지만.. 물론 그건 복장의 이미지 때문이지 실제로 그가 속옷을 겉에 입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웅 슈퍼맨은 속옷을 겉에 입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건 일단 썰렁한 농담이다.


 속옷은 단어 그대로 속에 입는 옷이다. 하지만 속옷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 심리는 엄청나다. "빅토리아 시크릿"이라는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여성 속옷 브랜드다. 미국에 갔을 때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 방문하고 놀란 적이 있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큰 매장도 대단했지만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북적거릴 정도로 많다는 것에 더 놀랐다. 난 우리나라 속옷 매장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한국 정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저씨 정서였을까, 속옷 매장에 적극적으로 가는 것이 좀 낯선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 40대 남자라면 더더욱. 하지만 미국 매장에서 본 풍경은 사뭇 달랐다. 남자 친구, 혹은 배우자와 함께 와서 속옷을 들춰보고 또 어림잡아 몸에 가져다 대 보면서 쇼핑을 한다. 커플이 함께 가서 같이 고르는 것이 요즘 MZ세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쉽지 않고 어색한 일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에도 속옷에 대한 수요는 대단하다. 브랜드도 대단했다. 지나온 광고들을 봐도 그렇다. 여성 속옷의 경우는 비비안, 비너스 같은 브랜가 유명했다. 그 브랜드들이 내건 메시지는 이렇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또 아름답기를 원한다면 이 브랜드를 선택하라" 그런 차원이다.

 그렇게 미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를 보여주었고, 남자 속옷 브랜드의 경우도 "속옷을 통해서 남자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트라이"라는 브랜드의 광고에서도 그것을 충분하게 어필하고 있다. 여성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남성이 엘리베이터 문을 손바닥으로 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광고다. CM송 가사도 이렇다. “멋진 남자, 멋진 여자, 오~ 트라이”

 정말 입은 속옷에 따라서 멋진 남자, 멋진 여자가 되는 걸까? 트라이를 입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빅토리아 시크릿은 정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비밀의 속옷이라도 되는 걸까? 보이지도 않는 속옷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속옷도 좋은 것으로 - 피부에 닿기 때문에 당연하게 좋은 재질의 제품을 입는 것이 당연하게 좋다 - 입는 것이 좋긴 하다. 이왕이면 자기만족에 따라서 예쁜 디자인의 속옷을 입는 것도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다. 속옷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된다. 편하고 피부에 자극이 없는 그런 속옷을 입는 것은 필요하다. 패션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할까? 그것도 당연하게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게 선을 넘는 차원은 어떤 속옷을 입느냐로 자신과 누군가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바지를 흘러내리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정말 지나칠 정도로 내려 입는 모습을 보면 '저게 뭔가' 싶다. 그게 무슨 힙합 패션인지 모르겠다. 꼰대스러운 내 입장에서는 그게 패션인지 의문이긴 하다. 바지를 내려 입는 것 자체가 패션인 건지 속옷까지 보이는 것이 그 패션에 포함된 건지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마음이 닫힐 수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속옷이 중요했다. 남성 팬티의 밴드 부분에 브랜드명이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CK정도는 입어줘야 그나마 볼만 했던 것일까? 아니면 더 괜찮은 브랜드가 있나? 그렇게 내려 입는 바지에 특화된 속옷이 정해져 있는 건가? 하긴 그렇게 내려 입은 바지에 튀어나온 팬티 브랜드가 쌍방울 BYC인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남이 입은 속옷 브랜드가 왜 중요할까? 아니, 내가 입은 속옷을 남들이 알아주는 게 왜 중요할까?  아무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인정 욕구'가 있다고 하지만, 속옷 브랜드까지 끌어들여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건가? 그런 면에서 트라이라는 브랜드의 초기 상품 전략은 좋았다. "편한 내의 트라이"가 그들의 카피였다.

 

 뭐든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 물론 아주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시간에는 특별한 속옷도 필요하겠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라도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든 마음이 좋아지든 기분이 좋아지면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그 또한 존중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그걸로 좋아질 정도면 그게 아니라고 좋아지지 못할 건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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