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질 것이다.
시작했고, 지속하려 노력했지만, 어느 날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일주일 동안 하나도 못 할 것이다. 한 달 동안 잊고 살 것이다. 스트레스가 밀려오면 옛날로 완전히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모두 넘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문제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넘어진 후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문제다.
“역시 나는 안 돼.” “시작도 제대로 못 하네.”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생각하면, 일어나지 못한다. 넘어진 것이 실패가 되고, 실패가 정체성이 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넘어졌네. 당연해. 다시 일어나면 돼.” 이렇게 생각하면, 넘어진 것은 그저 과정의 일부가 된다.
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Mindset』에서 말했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정체성으로 본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과정으로 본다. “나는 실패를 경험했다.”
작지만 큰 차이다. 전자는 일어나지 못하고, 후자는 다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 때문에 넘어진 후 일어나지 못한다.
“하루라도 빠뜨리면 안 돼.” “완벽하게 해야 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의미가 없어.” 이런 생각들이 발목을 잡는다.
완벽하게 하다가 한 번 무너지면, 완전히 포기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 이것이 완벽주의의 함정이다.
심리학자 토머스 그린스폰(Thomas Greenspon)은 연구했다. 완벽주의자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비율이 오히려 낮다고.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포기하기 때문이다.
반면 ’충분히 좋음(Good Enough)’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목표 달성률이 높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하기 때문이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렇게 말했다. “완벽주의는 자기 파괴적이다. 완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수치심과 비난과 판단으로 이어진다.”
생각 바꾸기에서도 완벽주의는 적이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충분히 좋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루 빠뜨렸다면, 괜찮다. 일주일 못 했다면,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Chapter 13에서 배웠듯이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은 나약함이 아니다.
넘어졌을 때,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쉽다.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해.” “또 실패했네.” “나는 정말 쓸모없어.” 이런 말들은 자동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이런 공격이 당신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주저앉게 만든다.
크리스틴 네프의 연구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보다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실패 후 더 빨리 회복한다고. 왜냐하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에게 친구처럼 말하는 것이다.
“힘들었구나. 괜찮아.” “넘어질 수도 있지. 누구나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천천히.”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해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넘어졌다면, 이유가 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환경이 바뀌었는가. 스트레스가 늘었는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 했는가. 동기를 잊었는가. 함께 가는 사람이 없었는가.
넘어진 후, 자책하지 말고 탐색하는 것이다. “왜 넘어졌을까?” 이 질문에 천천히 답하는 것이다.
이유를 알면 다시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같은 상황이 오면 다르게 대응할 수 있다.
나도 여러 번 넘어졌다. 잘하다가 완전히 멈췄다. 처음엔 나 자신을 탓했다. “나는 역시 안 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탐색하기 시작했다. “왜 멈췄을까?” 돌아보니 이유가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 했거나, 환경이 바뀌었거나,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이유를 알면 자책이 줄어든다.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 알게 된다.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한다.
“이번엔 제대로 해야지!” 하면서 크게 시작하려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 완벽하게.
하지만 넘어진 후에는 힘이 없다. 자신감도 없다. 크게 시작하면 다시 넘어진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아주 작게. Chapter 14에서 배웠듯이, 실패할 수 없을 만큼 작게.
한 달 동안 매일 했다가 넘어졌다면, 다시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세 번만 하는 것이다. 하루 10분 했다가 넘어졌다면, 다시 시작할 때는 하루 3분만 하는 것이다.
너무 작아 보이는가? 괜찮다. 작아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무한대로 낫다. 그리고 작게 시작하면 다시 쌓인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넘어지는 것도 연습이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근육이 생긴다. 자책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유를 탐색하는 법을 배운다. 작게 시작하는 법을 배운다. 자기 연민을 연습한다.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Grit』에서 말했다. “열정과 끈기는 재능이 아니다. 연습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다시 일어서는 것도 기술이다. 넘어질 때마다 연습하게 되고, 점점 빨리, 점점 쉽게 일어나게 된다.
처음 넘어졌을 때는 일어나는 데 오래 걸린다. 자책도 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넘어지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럴 때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연습의 기회로 보는 것이다.
큰 그림을 보자.
당신은 생각을 바꾸는 여정에 있다. 이 여정은 직선이 아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잘하다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또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과정이다. 넘어진 것도, 일어난 것도, 다시 넘어진 것도, 다시 일어난 것도.
2년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을 비교해 보라. 완벽하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다를 것이다. 그 조금이 중요하다.
작가 제임스 클리어(James Clear)는 말했다. “성공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생각을 바꾸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넘어진 것도 과정의 일부다.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다. 끝이 아니라 중간이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도 여러 번 넘어졌다. 3년 전 겨울, 심하게 무너진 적이 있다. 스트레스가 심했고,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알아차리기도, 자기 대화도, 아무것도 안 했다. 완전히 옛날로 돌아갔다.
한 달쯤 지나서,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노트를 꺼냈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펼쳐서 한 줄 적었다. “오늘 다시 시작한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넘어졌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졌다. 넘어진 것을 더 빨리 알아챘고, 덜 자책했고, 더 빨리 다시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지금도 가끔 넘어진다. 며칠 전에도 넘어졌다. 하지만 오늘 다시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배운 것이다. 넘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넘어질 것이고, 일어날 것이고, 또 넘어질 것이고, 또 일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강해진다.
시작했고, 지속하려 했고, 넘어졌고,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과정이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자기 연민을 연습하고, 이유를 탐색하고, 작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음 챕터에서는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것이 여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