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생각을 바꾸려 하는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좋은 이유들이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정은 길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다. 그때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깊은 이유가 필요하다.
의미가 필요하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Man’s Search for Meaning』을 썼다. 그는 발견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든” 견딜 수 있다. 프랭클의 말이다.
생각을 바꾸는 여정도 그렇다. 왜 하는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
“불안을 없애고 싶어.”
이것은 의미가 아니다. 목표다. 불안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편해질 거야.” 편해지면 그다음은? “행복할 거야.” 행복하면 그다음은?
계속 물어보면, 어느 순간 막힌다. 더 이상 대답이 없다.
의미는 다르다. 의미는 결과 너머에 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말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의 부산물이다.”
불안을 없애는 것 자체가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불안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라면, 이것은 의미가 될 수 있다.
성공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내 재능을 세상에 나누기 위해”라면, 이것은 의미가 될 수 있다.
결과는 끝이 있다. 달성하면 끝난다. 하지만 의미는 끝이 없다. 평생 추구할 수 있다.
의미는 누군가 줄 수 없다.
책에서 읽을 수도 없고, 강의에서 들을 수도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떻게 찾는가. 질문으로.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내가 없어도 괜찮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에 천천히, 정직하게 답하다 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
심리학자 로버트 엠몬스(Robert Emmons)는 "개인적 노력(Personal Strivings)"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분석했더니, 의미 있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지속했다고.
의미 있는 목표란 무엇인가. 자신보다 큰 무언가와 연결된 목표.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공동체, 가치와 연결된 목표.
생각을 바꾸는 것도 그렇다. 나만을 위한 것을 넘어설 때, 의미가 된다.
“자신보다 큰 무언가라니, 너무 거창한데.”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 많은 사람을 돕는 것, 위대한 일을 하는 것. 이런 것들만 의미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하지만 의미는 크기가 아니다. 깊이다.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말했다.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한 사람과의 진정한 만남, 그것도 의미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생각을 바꾸면,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Chapter 17에서 배웠듯이, 3단계까지 퍼져나간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의 동료가 조금씩 변한다.
이것도 의미다. 작지만 깊은 의미.
당신이 불안에도 불구하고 시도하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 그리고 용기를 얻는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의미다.
당신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 그리고 배운다. “넘어져도 괜찮구나.” 이것도 의미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한 사람에게 작은 변화를 만들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추위, 굶주림, 폭력, 죽음. 모든 것이 끔찍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다. 살고 싶은 의지를 잃었다.
하지만 프랭클은 견뎠다. 왜냐하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했다. “이 경험을 책으로 써야 한다.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 의미가 그를 살아남게 했다.
생각을 바꾸는 여정도 고통이 있다. 알아차리는 것의 고통, 패턴을 보는 것의 고통, 변하지 않는 것의 고통, 넘어지는 것의 고통.
하지만 의미가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알면, 고통도 감당할 수 있다.
심리학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Emily Esfahani Smith)는 『The Power of Meaning』에서 말했다. “행복은 느낌이다. 하지만 의미는 이유다. 행복은 왔다 간다. 하지만 의미는 남는다.”
힘들 때, 의미를 떠올리는 것이다. 왜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는가. 그 답이 당신을 계속 가게 만든다.
처음에 찾은 의미가 영원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깊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처음엔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였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달 지나면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로 바뀔 수 있다. 1년 지나면 “내 아이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로 깊어질 수 있다.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당신과 함께 자란다.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Dan McAdams)는 "생애 내러티브(Life Narrative)"를 연구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쓴다고. 과거를 재해석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의미도 그렇다.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그래서 가끔 멈춰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지금 나에게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답이 예전과 다를 수 있다. 괜찮다. 당신이 자랐다는 증거다.
의미는 잊혀진다.
처음엔 선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일상에 묻혀 잊는다. 그래서 기록하는 것이 좋다.
노트를 펴고 적는다.
“나는 왜 생각을 바꾸려 하는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천천히, 정직하게 답한다. 멋있게 쓸 필요 없다. 누가 볼 것도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리고 가끔, 특히 힘들 때, 꺼내서 읽는다. “아, 맞다. 나는 이것 때문에 하는 거였지.”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그러면 힘이 난다.
나도 그렇게 한다. 2년 전 노트 첫 페이지에 적었다.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 그때의 답은 간단했다. “더 이상 생각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지금 다시 보면 조금 다르다. “내 아이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생각과 싸우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변했다. 깊어졌다. 그리고 그 의미가 나를 계속 가게 만든다.
시작했고, 지속했고, 넘어졌고, 일어났고, 함께 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의미다. 왜 하는가를 아는 것. 무엇을 위해 하는가를 아는 것.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를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프랭클이 말했듯이, '왜'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의미를 찾으라. 작아도 괜찮다. 처음엔 흐릿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해질 것이다.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가 당신을 끝까지 데려갈 것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결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과정 자체를 즐기면 생각 뿐 아니라 인생이 재미있어진다.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