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특별함이라는 신기루

by 강훈

마흔이 되던 해 봄, 동네 카페에서 깨달았다. 내가 철저하게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저 멀리서 3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마흔이 되어서야 느껴진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노트북을 펼쳐놓고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창업을 준비하는 듯한 청년 몇 명이 둘러앉아 “유니콘 기업”을 꿈꾸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누군가가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 쉴 새 없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카페 전체를 둘러보니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 보였다. 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두 ‘특별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특별한 세상에서는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수학이었다. 정규분포 곡선을 떠올려보라. 모두가 상위 1%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단순한 산술을 외면할까?


그날 이후 나는 관찰을 시작했다. 아침 지하철에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 점심시간마다 ‘퍼스널 브랜딩’ 강의를 듣는 직장인들, 저녁마다 ‘부업으로 월 천만 원 벌기’ 유튜브를 시청하는 이들. 모두가 특별해지기 위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특별함 wannabe’ 인형들처럼.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나쁜 믿음(mauvaise foi)’이라 불렀을 것이다. 자신이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는 자기기만. 하지만 더 잔인한 진실은 우리가 이것이 자기기만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평범함은 언제부터 실패의 다른 이름이 되었을까?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 역시 특별함의 노예였다.

몇 해 전 뒤늦게 나이 먹고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나는 2년 안에 팀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매일 두 시간씩 일찍 출근했고, 때로는 주말도 반납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실상의 자기 착취였다.

2년 후, 나는 팀장이 되지 못했다. 대신 번아웃, 강박증 그리고 공황장애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정말로 내가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주입한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das Man(세인)’처럼,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 후로 1년 정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특별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평범하게 잠을 잤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처음으로 평온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을 죽인 자리에 ‘특별함’이라는 새로운 신을 세웠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가 우리의 가치를 매기고, 링크드인 프로필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는 특별해질 수 있어. 이 영상만 보면, 이 강의만 들으면, 이 제품만 사면.”


자본주의는 평범함을 적으로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것만 소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커피를, 특별한 요가 매트를,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한다. 우리의 특별함에 대한 갈망이 곧 누군가의 수익이 된다.


동양 철학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답을 제시했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한다. 장자(莊子)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말했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높은 곳만 바라보는가? 왜 모든 것에 쓸모를 부여하려 하는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1년 전쯤 작년 겨울이었다.

친구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반에서 ‘특별한 재능’이 없는 유일한 아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피아노, 바이올린, 발레, 코딩, 영어 스피치… 무언가에서 ‘특별함’을 인정받고 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이미 평범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도 그동안의 한국에서 했던 모든 사회생활과 활동들을 정리하고 잠수를 타듯 미국으로 이민을 온 터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병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이 거대한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추구하는 특별함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당신이 두려워하는 평범함은 정말 두려워할 만한 것인가?

만약 내일 당신이 영원히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정말 불행한 일인가?


솔직하게 이 글은 위로의 글이 아니다. 동기부여의 글도 아니다. 이것은 직시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특별함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사슬을 직시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계속 써 내려갈 글을 통해 한 가지만 증명하고 싶다.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가장 특별한 용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앞으로 이어질 글을 읽는다고 당신이 특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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