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평범함과의 대면(시작)

by 강훈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넘어서야 할 존재라고 선언했다. 그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수많은 오해를 낳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초인’, ‘특별한 존재’로 번역하며 남들보다 우월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니체가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라는 그의 선언은 ‘더 특별한 존재가 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라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신을 죽인 자리에 ‘특별함’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세웠다.


현대인은 매일 아침 스마트폰이라는 제단 앞에 엎드려 숭배한다. 인스타그램의 푸른빛 속에서 계시를 기다리고, 좋아요 숫자로 구원을 확인한다. 링크드인에서는 직함과 연봉으로 서열을 매기고, 유튜브에서는 구독자수로 가치를 환산한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가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간은 신을 죽이고, 스스로가 신이 되려 한다. 그것도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모두가 ‘남다른’ 삶을 살기 위해 똑같은 템플릿을 따른다는 것이다.

아침 5시 기상 - 미라클 모닝

명상과 요가 - 마음챙김

방탄커피 - 간헐적 단식

독서 1시간 - 성장 마인드셋

부업 2시간 - 파이어족

네트워킹 모임 - 인맥 관리

온라인 강의 수강 - 평생학습

취침 전 일기 - 메타인지

이것은 특별함을 향한 매뉴얼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매뉴얼을 따른다면, 그것이 어떻게 특별함일 수 있는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개념을 떠올려보자.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이 가르침은 평범함을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주어진 조건, 타고난 성향,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힘을 향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지금 거대한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개성을 추구하면서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차별화를 외치면서 같은 고지를 오르고

혁신을 말하면서 같은 길을 걷는다


스타벅스에서 ‘나만의 시그니처 음료’를 주문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라. 17가지 옵션을 조합해 만든 그 음료가 정말 ‘나만의’ 것인가? 아니면 기업이 제공한 선택지 안에서의 조합일 뿐인가?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맞춤형이란 우리를 특정한 소비자 그룹으로 분류한 결과일 뿐이다. ‘INFP를 위한 향수’, ‘ESTJ를 위한 노트북’, ‘7090 세대를 위한 투자법’… 우리는 특별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상품 카테고리에 가둔다.


1부에서 우리가 직면할 진실은 불편할 것이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대량생산된 환상일 수 있다.

당신이 추구하는 성공이 실은 타인이 정의한 실패의 반대말일 수 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평범함이 오히려 가장 진정한 자유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 시작이다.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화장을 지운 맨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필터 없는 사진을 찍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평범함과의 첫 번째 대면이다.


니체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특별함이라는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본 우리는 이제 그 심연에 삼켜졌다. 특별함을 추구할수록 더욱 평범해지는 역설. 남들과 다르고자 할수록 더욱 똑같아지는 운명.

이제 시선을 돌릴 때다.

심연이 아닌 대지를 보자.

구름이 아닌 땅을 딛자.

신기루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자.

그 첫 번째 장은 우리가 믿어왔던 성공 신화의 허상을 벗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준비되었는가?

평범함이라는 거울 앞에 설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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