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9 - 두려움, 그림자를 걷어내는 법

by 강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한일서 4:18)


밤에 전화기가 울리면 심장이 먼저 대답한다. 아무 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비상벨을 울린다. 두려움은 사실(what is)보다 상상(what if)에 민감하다. 그래서 말씀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들려준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이사야 41:10). 두려움은 혼자라는 감각에서 자라지만, 믿음은 함께 계시는 분의 이름으로 두려움의 뿌리를 끊는다.


심리학은 두려움을 ‘학습’이라 부른다.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에 따르면, 위협 신호는 편도체를 통해 순식간에 몸을 준비시키고, 그다음에야 전두엽이 의미를 해석한다. 그래서 “알아도” 떨리는 이유가 생긴다. 중요한 건 다른 학습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회피 대신 두려움과 마주할 때, 두려움 기억은 소거(extinction)라는 새로운 학습으로 덮인다. 모우러(O. Hobart Mowrer)의 고전적인 회피 이론이 말하듯, 우리는 피할수록 ‘안도’가 보상되어 회피가 굳어진다. 반대로 믿음 안에서 작게라도 마주하는 순간, 보상의 자리는 “피했고 살아남았다”가 아니라 “마주하고 승리했다”로 바뀐다. 그때 신경계는 미세하게 다른 길을 기억한다.


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용기를 “무(無)의 위협 속에서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행위”라고 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나는 ‘내가’ 용감해서 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붙드시는 하나님 안에서 선다. 용기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관계의 위치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동시에 “내가 함께한다”는 약속과 붙어 다닌다. 명령은 의지에, 약속은 마음속 깊은 곳에 닿는다.


나는 아침마다 작은 의식을 만든다. 오늘의 ‘무엇이면’(what if)을 하나님 앞에 소리 내어 올린다. “만약 실패하면… 만약 거절당하면… 만약 병이 더하면…” 그러고 나서 한 줄을 덧붙인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면.” 시편의 그러나(Nevertheless)는 신앙의 전환점이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자리 조정을 당한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저 멀리 변두리로.


두려움 앞에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속도다. 숨이 가빠지면 길이 짧아진다. 그럴 때, 아주 작은 순종 하나가 방향을 지킨다. 전화를 미루지 않고 한 통 걸기, 오늘의 서류를 오늘 보낸다는 사소한 결심, 병원 문을 혼자가 아니라 기도로 열고 들어가기. 이것들은 ‘극복’의 영웅담이 아니라 동행의 증거다. 르두가 말한 대로, 몸은 반복으로 배운다. 반복되는 작은 용기는 신경계에 하나님 쪽으로 기우는 습관을 새긴다.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기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지만 진짜 은혜는 매일의 삶이 쌓이면서 나온다.


두려움은 거짓 예언자처럼 ‘미리’ 말한다. “망할 것이다, 끝날 것이다.” 복음은 시간의 어순을 바꾼다. “이미 사랑받았다, 이미 값 주고 사셨다.”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재난을 오늘의 믿음으로 미리 치르지 말자. 예수님은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고 하셨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시작하는 능력(natality)’처럼, 하나님은 오늘 안에 새로운 시작을 담아 보내신다. 두려움이 어제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믿음은 오늘의 은혜를 출력한다.


어쩌면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모함이나 용기가 아니다. 사랑이다. 사랑은 방향을 준다. 사랑하면 움직인다. 움직이면 배운다. 배운다는 것은, 같은 소리에 매번 똑같이 놀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도 좋지 않은 소식을 담은 전화가 울릴 수 있다. 그래도 먼저 숨을 쉬고, 짧게 기도하고, 필요한 일을 한다. 그리고 밤에는 이렇게 고백한다. “오늘도 주님이 함께 계셔서, 내가 두려움과 함께 살지 않고 주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내 안의 사랑이 완전해서가 아니다. 완전하신 사랑이 밖에서 와서 내 안을 채우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그림자는 여전히 움직인다. 그러나 빛이 더 가까우면, 그림자는 먼발치로 물러난다. 나와 당신의 오늘 한 걸음이 그 빛 쪽으로 향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