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10 - 지켜지는 평안

by 강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평안은 고요한 바다가 아니다. 풍랑이 멎을 때 찾아오는 기분이 아니라, 풍랑 가운데서 작동하는 힘이다. 성경은 그 평안을 “지키심”으로 설명한다. 내가 마음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게 되는 일. 그래서 평안은 성품이라기보다 관계의 결과다. 누가 나를 지키는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시는 분이다.


심리학은 평안을 감정의 상태로만 보지 않는다.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은 감사, 기쁨 같은 긍정 정서가 주의를 넓히고(broaden) 자원을 쌓아(build)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을 높인다고 말했다(확장과 구축 이론).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와 마이클 매컬러(Michael McCullough)는 작은 감사 기록이 수면, 우울, 대인관계 만족에 유의미한 변화를 낳는다고 보고했다. 신학의 언어로 바꾸면 단순하다. 감사는 평안을 불러오는 습관이고, 그 습관은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고 했다. 믿음의 발걸음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내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맡김은 포기가 아니다. 포기는 손을 놓지만, 맡김은 손을 올린다. 포기는 “어차피”를 말하지만, 맡김은 “그럼에도”를 고백한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을 감사와 기도라는 구체적 행위와 한 쌍으로 묶는다. 평안은 생각의 결심으로 오지 않고, 감사의 몸짓을 통과해 온다.


나는 저녁이면 하루를 짧게 되감는다. 오늘 내 마음을 흔든 문장 하나, 나를 지켜 준 얼굴 하나,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평범한 순간 하나. 그 세 가지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낮에 흔들리던 걱정이 크기 조절을 당한다.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중심에서 변두리로 물러난다. 심리학이 말하는 주의집중의 재배치이자, 신앙이 말하는 통치의 재배치다. 내가 왕좌에 앉아 모든 것을 통제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다시 모신다.


평안은 빠르지 않다. 두려움은 즉각 반응하지만, 평안은 다져진 길을 찾아온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 급할수록 짧게라도 말씀을 입술에 얹는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니.” 단열재가 온도를 서서히 잡듯, 짧은 기도가 마음의 기압을 맞춘다. 신경과학은 전전두엽이 편도체의 경보를 조절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더 먼저 말한다. “여호와가 너를 지키시리라”(시편 121편). 기술 이전에 관계가 있고, 조절 이전에 동행이 있다.


물론 어떤 날은 말씀이 멀게 느껴진다. 감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다른 동역자들의 믿음을 잠시 빌린다. 교회가 함께 드리는 고백, 세례 때 들었던 약속, 성도들의 오래된 찬송 가사. 개인의 느낌이 사라질 때, 공동체의 기억이 내 마음을 붙든다. 스스로를 설득할 힘이 없을 때, 우리는 함께 믿는다. 그 믿음의 그늘 아래서도 평안은 일한다. 지키심은 내 확신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지키시는 분의 신실함에 달려 있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마음에는 이성이 모르는 까닭들이 있다”고 했다. 평안도 그렇다. 계산이 맞아떨어져 생기는 균형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 와서 주는 질서다. 그래서 평안은 논쟁에서 이기는 힘이 아니라, 사랑을 계속할 여지다. 내 안에서 평안이 사라질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자비다. 평안이 돌아올 때 가장 먼저 회복되는 것도 자비다. 평안은 나를 느슨하게 만드는 마취가 아니라, 선택을 분명하게 만드는 빛이다.


오늘도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다. 덮어둔 서류,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사람의 마음. 나는 이 모든 것 위에, 한 문장을 덮어쓴다. “주님, 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작은 순서를 정한다. 먼저 해야 할 한 가지를 하고, 남겨둘 것을 남긴다. 평안은 질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지켜질 때, 시간도 지켜진다.


끝으로, 평안은 결승선의 메달이 아니다. 평안은 그저 살아내며 걸어가는 길이다. 걸으면 남는다. 남는 것은 감정의 여운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걸으셨다는 흔적이다. 오늘 당신의 발걸음이 그 흔적 위를 밟게 되기를 소망한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그 평안이,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히 효력을 발휘하여,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