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AI가 조장하는 개인화의 함정
아침 7시, 출근 준비를 하며 인스타그램을 연다.
첫 번째 게시물. 대학 동창이 발리 여행 사진을 올렸다. "나만의 힐링 스팟 발견"
두 번째 게시물. 회사 동료가 새로 산 가방을 자랑한다. "나를 위한 선물"
세 번째 게시물. 모르는 인플루언서가 아침 루틴을 공유한다. "My morning routine"
스크롤을 내린다. 더 내린다. 멈출 수 없다.
문득 깨닫는다. 30분이 지났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내가 본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만 평범한 아침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통찰이 떠오른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가짜가 진짜를 대체한다고 했다.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아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가짜를 진짜보다 더 진짜라고 믿는다. 필터링된 사진이 실제 얼굴보다 '더 나'라고 느낀다. 편집된 일상이 진짜 일상보다 '더 내 삶'이라고 생각한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실제 삶을 이미지에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간다.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인증하기 위해 간다. 우리는 살기 위해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산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을 위한 맞춤형 추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대한 착각이다. 알고리즘은 '나'를 보는 게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을 본다. 내가 클릭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비슷한 패턴을 가진 집단에 나를 분류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Guattari)가 말한 '리좀(Rhizome)'과는 정반대다.
리좀은 중심 없이 무한히 뻗어나가는 연결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다양하고, 창조적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우리를 나무처럼 만든다. 뿌리(데이터)에서 줄기(패턴)로, 가지(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에서 예측 가능한 소비자가 된다.
처음엔 내가 알고리즘을 훈련시킨다고 생각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하고, 스킵하면서. 하지만 곧 깨닫는다. 알고리즘이 나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을.
점점 비슷한 콘텐츠만 본다. 점점 좁은 세계에 갇힌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안다.
"나만의"라는 말의 범람을 보라.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가 엄청나게 많다. 이 역설을 우리는 왜 보지 못할까?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das Man(세인)' 개념이 정확히 이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개성을 추구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들이 하는 대로' 한다. 남들과 다르고 싶어 하지만, 남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만 다르고 싶어 한다. 그렇다. 남들이 인정하는 방식이 아니면 안 되는 거다.
진정한 자기 자신(authentic self)이 되는 대신, 우리는 '그들-자기(they-self)'가 된다. SNS는 이 '그들'의 시선을 24시간 의식하게 만든다. 좋아요 숫자를 확인할 때, 우리는 묻는다. "이것이 충분한가?"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충분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
AI 시대는 이 소외를 극대화한다.
ChatGPT에게 묻는다. "나에게 맞는 취미를 추천해 줘."
AI가 답한다. 당신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라고. 하지만 AI는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을 뿐이다. AI가 주는 '특별한' 답은 실은 가장 '평균적인' 답이다. 우리는 기계에게 자아를 묻는다. 기계는 통계를 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통계를 나라고 믿는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체임버(echo chamber)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편향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축소다. 매일 같은 관점만 보고, 같은 의견만 듣고, 같은 취향만 확인한다. 그러다 문득 다른 세계를 만나면 충격을 받는다. "이런 사람들도 있어?"
세계는 무한히 넓은데, 우리의 세계는 점점 좁아진다. 연결의 시대에 우리는 더 단절되었다. 소통의 시대에 우리는 더 고립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벗어날까?
며칠 전, 일부러 알고리즘을 거슬렀다. 평소 보지 않는 채널을 찾아갔다. 관심 없다고 생각했던 주제를 검색했다. 추천을 무시하고 랜덤하게 클릭했다. 처음엔 불편했다. 마치 익숙한 길을 벗어나 낯선 골목을 걷는 느낌.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발견이 있었다.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났다. 알고리즘이 '너는 이런 걸 안 좋아해'라고 결정했던 것들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진짜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하는 선택이다.
그것은 좋아요가 없어도 계속하는 용기다.
그것은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존재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인간'이다. 남의 가치가 아닌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
알고리즘 시대의 위버멘쉬는 이런 사람이다:
추천을 거부하고 직접 찾는 사람.
필터를 벗고 맨얼굴을 보이는 사람.
좋아요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
오늘 아침,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창밖을 본다. 필터 없는 하늘이 있다. 편집되지 않은 구름이 흐른다. 좋아요를 기다리지 않는 새들이 노래한다. 이것이 진짜 세계다.
예측 불가능하고, 분류 불가능하고, 무한히 다양한.
우리도 원래 그랬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상자에 넣기 전까지는.
이제 상자에서 나올 시간이다.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알고리즘 시대의 진정한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