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위한 무의미한 경쟁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든다.
인스타그램. 대학 동기가 승진 소식을 올렸다. 하트를 누른다. 속이 쓰리다. 전 직장 동료가 이직했다. 연봉이 40% 올랐단다. 축하 댓글을 단다. 손가락이 무겁다. 카톡. 단체방에서 누군가 아파트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축하 이모티콘을 보낸다. 마음이 무겁다.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세 번이나 졌다.
이것이 우리의 아침이다. 비교로 시작해서 비교로 끝나는 하루.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경주를 시작했을까? 그리고 이 경주의 결승선은 어디일까?
비교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이다.
원시 시대, 생존을 위해 필요했다. 누가 더 강한지, 누가 더 빠른지 아는 것은 생사의 문제였다. 하지만 현대의 비교는 다르다. 생존이 아닌 불안을 위한 비교가 되었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 30명과 비교했다. 1년에 몇 번, 장터나 잔치에서 만날 때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스타그램을 켜는 순간, 우리는 전 세계 80억 명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하루에 수십 번씩.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비교하는 대상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올린 사진은 100장 중 고른 1장이다. 그들이 쓴 글은 수십 번 수정한 완성본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365일 중 특별한 1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타인의 특별한 순간과 비교한다. 애초에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다.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라고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둑이 오는 줄 알면서도 문을 열어둔다. 왜일까?
비교가 주는 달콤한 착각 때문이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착각.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착각. 하지만 이것은 GPS가 아니라 신기루다. 비교를 통해 우리가 아는 것은 위치가 아니라 불안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인간의 욕망이 본질적으로 '모방적'이라고 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직접 욕망하지 않는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친구가 산 가방이 갑자기 예뻐 보이고, 동료가 간 여행지가 급격히 가고 싶어지고, 누군가 시작한 취미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욕망은 우리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를 통해 전염된 욕망이다.
현대 사회는 비교를 부추긴다. 아니, 강요한다. 학교는 등수를 매기고, 회사는 성과를 평가하고, 사회는 연봉을 묻는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비교당하고, 비교하도록 훈련받는다.
"옆집 아이는 벌써 걸어요"
"같은 반 친구는 영어를 잘해요"
"동기는 벌써 과장이 됐어요"
"친구는 작년에 결혼했어요"
끊임없는 비교의 채찍질.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속도로 살고 싶은지. 모든 기준이 타인이 되어버린다.
더 무서운 것은 비교가 만드는 착시 현상이다. 연봉 7천만 원.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주변이 모두 1억 원을 받는다면? 갑자기 초라해진다. 반대로 주변이 모두 5천만 원을 받는다면? 갑자기 뿌듯해진다.
같은 7천만 원인데, 비교 대상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진다. 이것이 합리적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 비합리적인 게임을 매일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상대적 박탈감'이라 부른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현대인의 불행은 대부분 여기서 온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남보다 못 먹어서 불행하고, 추워서가 아니라 남보다 초라한 옷을 입어서 불행하고, 외로워서가 아니라 남보다 팔로워가 적어서 불행하다.
비교는 끝이 없다. 대리가 되면 과장과 비교하고, 과장이 되면 부장과 비교한다. 아파트를 사면 더 큰 아파트와 비교하고, 외제차를 사면 더 비싼 외제차와 비교한다.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올라갈수록 더 높은 곳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누군가와 또 비교한다. 지칠 때까지, 쓰러질 때까지.
그렇다면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비교는 인간의 본성이니까. 하지만 비교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남과의 비교에서 나 자신과의 비교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은가?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성장했는가? 이것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비교다. 남과 비교하면 언제나 부족하다. 80억 명 중엔 늘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와 비교하면 언제나 성장이 보인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것이 진짜 성공이다.
동양 철학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똑같아지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각자가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비교하지 않고도 함께 숲을 이룬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리듬으로. 그것이 진정한 다양성이고, 진정한 조화다.
오늘 아침, 휴대폰을 들기 전에 잠시 멈춰보자.
이 하루를 비교로 시작할 것인가, 감사로 시작할 것인가?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 따뜻한 이불과 편안한 잠자리. 마실 물과 먹을 음식.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충분하지 못했던 것들. 비교를 멈추면 다시 충분해진다.
특별함을 향한 무의미한 경쟁. 그 경주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자.
1등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달리는지 아는 것이다. 남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다.
비교를 멈출 때, 비로소 내가 보인다.
그리고 그때, 진짜 특별함이 시작된다.
남과 다른 특별함이 아닌,
나다운 특별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