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진정한 나를 잃다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by 강훈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혼자 있다. TV도 끄고, 음악도 끄고, 휴대폰도 멀리 둔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다. 5분도 안 돼서 불안해진다.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생산적인 무언가, 의미 있는 무언가. 그냥 있는 것은 시간 낭비 같다.


휴대폰을 다시 든다. 습관적으로 SNS를 연다.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바쁘다. 누군가는 요가 클래스에 있고, 누군가는 브런치 카페에 있고, 누군가는 전시회에 있다. 나는? 그냥 소파에 앉아 있다.

갑자기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남들처럼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 왜? 모르겠다. 그냥... 남들이 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추구하고, 내 속도보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때는 달랐다. 비 오는 날 웅덩이에서 뛰어놀고 싶으면 뛰어놀았다. 더러워진다고? 상관없었다. 재미있으니까. 하루 종일 만화책만 보고 싶으면 그랬다. 시간 낭비라고? 몰랐다. 좋으니까. 하지만 자라면서 배웠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래야 한다'는 것을. 좋은 학생이 되어야 하고, 좋은 직원이 되어야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좋은'의 기준은 누가 정했을까?


회사에서의 나를 본다. 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안. 모두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

"주말 잘 보냈어요?"

"네, 뭐... 그냥요."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요."

아무도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실 주말 내내 잠만 잤어요. 너무 좋았어요."

"어제 하루 종일 게임만 했어요. 최고였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렸어요. 행복했어요."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연기한다. '정상적인 직장인'을 연기한다.


더 깊은 문제는 연기가 진짜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남들 앞에서만 연기했다. 하지만 점점 혼자 있을 때도 연기한다. 아니,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된다. 정말로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커피를 좋아하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정말로 내가 운동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건강을 관리하는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걸까? 정말로 내가 책을 읽고 싶은 걸까? 아니면 '독서하는 지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원하는 걸까?

물음표만 늘어간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작년, 한 심리 상담사와 대화를 나눴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이 뭔가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왜 그런 것 같으세요?"

"너무 오래 남의 기준으로 살았으니까요. 부모의 기대, 사회의 요구, 또래의 압력... 그것들을 만족시키느라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거죠."

그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나도 그랬으니까.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의 비극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가진 것'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학벌, 직업, 연봉, 재산, 심지어 취미와 취향까지도 소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인 것'이다. 존재 그 자체다.

문제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명할 수 없다. 자랑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려 한다. 보여주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최근 깨달은 것이 있다. 진짜 나를 찾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는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 칭찬도 비난도 없을 때 무엇을 즐기는가? 그것이 진짜 나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오래된 팝송을 듣는다. 세련되지 않다. 트렌디하지도 않다. 하지만 좋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만화를 본다. 유치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나는 칭찬받지 못해도 글을 쓴다. 읽는 사람이 없어도.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나를 만든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가 아닌, 진짜 나를.


며칠 전,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너 많이 변했다."

"어떻게?"

"편해 보여. 예전엔 항상 뭔가 분주한 것 같았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분주했다.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내가 성공한 사람임을

증명을 멈추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남의 인정 없이도 충분해졌다.


일요일 오후, 다시 소파에 앉는다.

이번엔 불안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도 나의 선택이니까.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예전의 나처럼.

하지만 나는 여기 있는다. 그냥 있는다.

숨을 쉬고, 생각하고, 존재한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남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로.


이것이 용기다.

모두가 뛰어갈 때 걷는 용기.

모두가 올라갈 때 머무르는 용기.

모두가 특별해질 때 평범한 용기.

진정한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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