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장은 우리의 결핍을 사랑하는가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을 지나간다. 거울들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거울들 앞에서 모든 사람이 불완전해 보인다. 주름이 도드라지고, 모공이 확대되고, 잡티가 강조된다.
우연일까.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조명의 마법이다. 결점을 드러내는 각도로 비추는 빛. 당신의 불완전함을 먼저 보여준 다음, 그것을 가릴 제품을 판다.
시장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먹고 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불완전하다고 느끼게 만든 다음 그 불안을 판다.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의존 효과(Dependence Effect)’를 말했다. 현대 자본주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창조한다. 없던 필요를 만들고, 없던 결핍을 만들고, 없던 문제를 만든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판다.
백 년 전에는 없던 고민들. 체취가 있다는 것, 피부가 늙는다는 것, 머리카락이 윤기가 없다는 것. 이것들이 언제부터 문제가 되었을까. 그것을 ‘해결’하는 상품이 나온 이후부터다.
“당신은 아직 진짜 자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더 나은 당신이 기다립니다.”
“변화는 지금부터입니다.”
교묘한 언어들. 지금의 당신은 가짜고, 부족하고, 미완성이라는 메시지. 그리고 이 제품을 사면, 이 서비스를 받으면, 이 과정을 거치면 완전해진다는 약속.
하지만 나이 50이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새로운 결핍이 발견될 뿐이다. 주름을 없애면 처짐이 보이고, 처짐을 당기면 표정이 사라지고, 표정을 살리면 다시 주름이 생긴다.
끝없는 쳇바퀴. 그것이 불완전함의 경제학이다.
미용실에서 듣는 이야기들.
“이게 요즘 유행하는 딱 그 헤어스타일이예요.”
“이번 시즌 컬러로 하는 게 어때요?”
“이게 연예인들이 많이 하는 핫한 아이템이예요.”
유행. 그것은 어제의 완벽을 오늘의 구식으로 만드는 마법이다. 작년에 산 옷이 촌스러워지고, 지난달에 한 시술이 시대에 뒤떨어진다.
왜 우리는 계속 바뀌어야 하는가. 산업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만족하면 경제가 멈춘다. 불만족과 불안이 있어야 소비가 일어난다. 그래서 시장은 끊임없이 우리의 불완전함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역설이 있다.
진짜 부자들, 진짜 권력자들을 보라. 그들은 오히려 변하지 않는다.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같은 브랜드를 고수하고,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 마크 저커버그의 회색 티셔츠. 워런 버핏의 낡은 양복. 그들은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는다. 감출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하니까.
오히려 중산층이, 서민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완벽을 추구한다. 불완전함을 감추려 애쓴다. 그리고 그 노력이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불완전함의 경제학이 만든 잔인한 아이러니다.
헝가리 출신 정신분석가 산도르 페렌치(Sándor Ferenczi)의 통찰이 있다.
“자본주의는 신경증을 필요로 한다.”
불안하고, 강박적이고,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이 이상적인 소비자다. 만족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행복한 사람은 반체제적이다. 그래서 시장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남들과 비교하게 만들고, 뒤처진다고 느끼게 만들고, 따라잡아야 한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것은 당신의 불안이 아니다. 시장이 심은 불안이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의 철학이 인상 깊었다.
“손님, 이거면 충분해요. 더 비싼 거 필요 없어요.”
대기업 마트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곳에서는 항상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더 비싼 것을 권한다.
작은 가게 주인은 손님과 오래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정직하다. 반면 대기업은 분기 실적을 본다. 그래서 더 많이 팔아야 한다. 당신의 불완전함을 자극해서라도.
오래된 물건들을 꺼내본다. 십 년 된 손목시계. 긁히고 변색됐지만 여전히 시간을 알려준다. 역시 십 년 된 가죽 지갑. 낡고 해졌지만 여전히 돈을 담는다. 이십 년 된 만년필. 잉크가 새기도 하지만 여전히 글이 잘 써진다. 이것들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충분하다. 새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이것이 나의 작은 저항이다. 불완전함의 경제학에 대한.
그렇다고 해서 시장을 적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명을 거부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알아차리자는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결핍이 진짜인지, 만들어진 것인지. 당신이 원하는 완벽이 당신의 것인지, 주입된 것인지.
그리고 선택하자. 의식적으로, 주체적으로.
어떤 불완전함은 고쳐야 한다. 건강을 해치는 것, 관계를 망치는 것, 삶을 힘들게 하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불완전함은 그냥 둬도 된다. 주름, 흰머리, 낡은 물건, 유행 지난 스타일. 그것들은 문제가 아니다. 단지 시간의 흔적일 뿐이다.
불완전함의 경제학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되, 그것을 상품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과 함께 살되,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한 것을 사되, 불안 때문에 사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