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과 일상> 2 - 보이지 않아도 의미 있다

by 강훈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4)


아침마다 누군가는 먼저 불을 켠다. 교회 현관의 먼지를 닦고, 유치부 교실의 작은 의자를 가지런히 놓고, 누구의 이름도 적히지 않는 기도 제목을 접어 올린다. 회사에서는 누군가가 회의록을 다듬고, 틀린 숫자를 하나씩 바로잡고, 끝나면 마지막으로 불을 끈다. 이 일들은 박수 소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그 일이 묻히지 않는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애에도 긴 숨은 해가 있었다. 공생애(공적인 사역) 삼 년을 빛나게 만든 것은, 나사렛에서 보낸 30년이다. 목공 작업실의 톱밥 냄새가 배고,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부탁을 들어주며, 집안일을 거들던 그 시간들이 하나도 비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명은 무대에서만 빛나지 않는다. 소명은 무대 뒤에서 형성되고, 무대 밖에서 더 단단해진다.


숨은 자리의 신학은 이렇게 고백한다. 은밀함은 결핍이 아니라 장소다. 하나님이 보시는 장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때. 마태복음 6장은 반복해서 말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갚음은 명예나 보상과 동일하지 않다. 때로 그 갚음은 내 마음의 평안, 관계의 화해, 견디는 힘, 더 맑은 양심으로 온다. 하나님은 결과만이 아니라 영혼의 결을 갚으신다.


심리학은 여기에 작은 등불을 보탠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별함”이 아니라 “소속감(belonging)”이라고 했다. 소속감은 누가 알아봐 줄 때 생기기도 하지만, 더 깊게는 “내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서 온다. 숨은 자리는 이 연결을 잃은 곳이 아니다. 보상과 박수의 회로에서 잠시 연결을 내려놓고, 존재의 근원에 다시 연결하는 자리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말한 의미(logos)가 의지를 견인하듯, 작은 의미의 연결이 우리를 견인한다. 오늘 내가 정리한 한 줄의 보고서, 내가 보낸 한 통의 안부, 내가 묵상한 한 구절이 누군가의 하루에 미세한 방향을 만든다. 보이지 않는 영향은 보이는 영향보다 오래간다.


철학에서도 이런 빛이 있다.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주의(attention)는 곧 기도”라고 했다. 숨은 자리는 주의를 훈련하는 자리다. 누구의 눈치가 없어도 깨어 챙기는 마음, 아무도 보지 않아도 끝맺음을 정결하게 하는 손. 이 주의의 습관이 영혼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소함이 아니라 사소함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을 빚는다.


영성의 전통도 같은 길을 걷는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려고 부름 받지 않았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라고 부름 받았다.” 숨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남아 있다. 작은 것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대하는 일이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는 쉽게 허무를 부른다. 그 허무의 질문은 이렇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때 신앙의 대답은 의미를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의미를 약속하는 말씀에서 온다. “주의 안에서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린도전서 15:58). 헛됨을 이기는 것은 감정의 파도타기가 아니라, 말씀의 닻을 내리는 일이다. 감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오간다. 닻은 바닥을 붙든다. 숨은 자리에서 우리는 감정의 일기예보가 아니라 말씀의 등대를 따른다.


그래서 오늘 이런 고백이 가능하다. 알아주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빨리 보상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돋보이지 않지만, 주님께서 내 작은 손을 보신다. 사람의 시선이 비껴가도, 하나님의 시선은 한 번도 나를 비껴간 적이 없다. 그 시선이 나를 일으키고, 그 시선이 나를 지킨다.


하루가 저문 뒤에 책상 위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내가 이룬 성과와, 내가 어떻게 했는가의 향기. 성과는 내일 다른 결과로 갈아 끼워지겠지만, 향기는 영혼의 안쪽에 스민다. 숨은 자리의 신학은 이 향기를 믿는다. 언젠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드러내실 때, 우리가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순종이 하늘의 이야기로 읽힐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한 번 더 정성껏 닦고, 한 번 더 조용히 축복하고, 한 번 더 은밀히 용서하자. 그 작은 동작들이 하늘에 기록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