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이라는 이름의 성소

당신의 직업은 생계인가, 소명인가

by 강훈

많은 신자가 교회 안에서의 직분(장로, 집사, 교사)은 신성하게 여기지만, 세상에서의 직업(부장, 대리, 사장)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전도를 위한 발판으로만 여긴다. 그래서 교회 봉사에는 온 힘을 쏟으면서도, 정작 직장 업무에서는 적당히 타협하거나 전문성을 기르는 일에 게으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교회 마이크를 잡는 손보다, 정직하게 서류를 검토하고 정밀하게 기계를 깎는 손끝에서 더 강력하게 증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활동을 '포이에시스(Poiesis)'와 '프락시스(Praxis)'로 구분했다. 포이에시스는 어떤 제작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활동'이며 그 목적이 결과물에 있다. 반면 프락시스는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인 '실천적 행위'로, 그 과정을 통해 행위자의 인격이 완성된다. 신앙인에게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프락시스가 되어야 한다. 내가 만든 제품의 품질과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정직함이 곧 나의 신앙 고백이기 때문이다.


직업적 탁월함은 '자기 효능감'을 넘어 타인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핵심 동력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유창한 복음 설명보다, 우리가 업무를 처리하는 태도와 실력에서 신뢰를 느낀다. 실력 없는 신자의 전도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정점에 선 신자의 성실함은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복음이 된다. 탁월함은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이다.


신학적으로 이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가꾸고 다스릴 책임을 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직장은 선교지로 가기 전 거쳐 가는 대합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소다. 정직한 납세, 공정한 거래, 동료에 대한 예의,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갖추는 것 자체가 가장 고결한 형태의 예배다. 교회 안에서의 1시간 기도만큼이나, 사무실에서의 8시간 노동이 숭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직업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다. 업무 시간에 성경을 보거나 기도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라 직무유기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동료들의 짐을 나누어지며,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세상은 '기도 많이 하는 직업인'이 아니라 '믿음직한 직업인'을 필요로 한다. 상식이 통하는 신앙인은 하늘의 언어를 세상의 숙련된 솜씨로 번역해내는 사람이다.


이제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당신이 매일 마주하는 모니터, 상담하는 고객, 관리하는 장부들이 곧 당신의 제단이다. 당신의 직업적 탁월함이 누군가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세상의 결핍을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가장 거룩한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의 한복판에서 최고의 실력으로 최선의 정직을 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상의 성소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진짜 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