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뻗지 않을 권리

아우구스트 란트메서의 팔짱

by 강훈

-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침묵으로 '아니오'를 외치는 법

세상에는 '분위기'라는 무서운 힘이 있다. 축제에서 다 같이 환호할 때 나 혼자 입을 다물고 있거나, 모두가 누군가를 비난할 때 나 혼자 가만히 있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순간 쏟아질 따가운 시선과 소외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내 마음속 목소리를 누르고, 슬그머니 군중 속에 섞여 남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곤 한다.


- 수천 명 중 유일하게 팔짱을 낀 사내

1936년 독일 함부르크, 거대한 군함의 진수식이 열렸다. 그곳엔 히틀러도 참석해 있었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제히 오른팔을 뻗어 '나치 경례'를 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광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이던 그 순간, 딱 한 사람만이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바로 아우구스트 란트메서다.

그는 군중 속에서 홀로 팔짱을 낀 채, 비웃는 듯한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천 개의 팔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갈 때, 그는 자신의 팔을 가슴팍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 사진 속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홀로 멈춰 서 있는 부품처럼 이질적이고도 강렬했다.


- 거창한 신념보다 강했던 '사랑'의 힘

란트메서가 팔을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대단한 정치가였거나 혁명가여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훨씬 개인적이고 소박했다. 그는 유대인 여성인 이르마 에클러를 사랑했고,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치는 그들의 사랑을 '죄'라고 불렀다.

그에게 나치 경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부정하는 일과 같았다.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강요하는 '가짜 충성'보다, 한 사람을 향한 '진짜 사랑'을 선택했다. 그에게 팔짱을 낀 행위는 세상을 바꾸려는 투쟁이라기보다,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 당신은 언제 팔짱을 끼는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팔을 뻗으라'는 무언의 압박은 계속된다. 회사에서, SNS에서, 혹은 친구들 사이에서 "남들 다 하는 건데 너는 왜 그래?"라는 시선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란트메서의 팔짱을 떠올려야 한다.

주권적인 인간은 남들의 속도에 내 발걸음을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내가 옳지 않다고 믿는 일이라면, 모두가 박수를 칠 때 조용히 팔짱을 낄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거창한 영웅이 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가치, 내가 믿는 상식을 지키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의 삶은 오늘, 누구를 지키기 위해 팔짱을 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