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체감하는 변화 중에서 제법 빨리 온 것이 노안이다. 어느 날 문득, 가까운 것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임을 물리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변화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퍽 서글펐다. 하지만 이 뿌연 안개의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깨닫는다. 이것은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보라는 재촉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세상을 얼마나 냉정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재단해 왔는지를 돌아보라는 잠잠한 경고였다.
젊은 시절의 나는 참으로 오만한 관찰자였다. 내 시선은 언제나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 같았다. 사람을 만날 때도 상대방이 가진 유용함이나 사회적 수치를 빠르게 계산하며, 나보다 앞서가는지 뒤처지는지를 가늠하기 바빴다. 반대로 나도 타인에게 그런 차원에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타인의 고통조차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안도감의 배경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나의 삶을 빛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예의 없는 시선이었다. 내가 옳다는 확신에 차서 다른 사람의 서툰 행동을 비웃던 나의 옹졸함을, 이제야 흐릿해진 시력 사이로 마주한다.
오십 대에 접어들어 시야가 뭉툭해지니, 역설적으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의 조리개 안으로 조금씩 들어온다. 이제는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의 성취보다, 그 빛을 지탱하기 위해 바르르 떨고 있는 고단한 어깨가 먼저 보인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이들의 무표정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결점을 찾아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신 그 무표정 뒤에 겹겹이 쌓인 세월의 흉터와, 그 흉터를 견디며 오늘을 살아낸 한 인간의 깊은 서사를 읽어내려 애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던 오만한 관객의 의자에서 내려와, 묵묵히 곁에서 보폭을 맞추는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의 실수를 보며 혀를 차던 습관을 버리고, 그가 그 실수를 저지르기까지 견뎌야 했던 아픈 고독을 상상해 본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점수를 매기던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고, 그저 “당신도 참 애쓰며 여기까지 왔군요”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마음을 배운다. 이것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더 이상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물론 여전히 내겐 멀고 정말 쉽지 않은 자세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나를 효율의 논리로부터 해방해 주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쓸모 있는 것만을 추구하며 느리고 서툰 것들을 밀어내려 하지만, 동반자의 눈으로 보면 그 모든 주름과 망설임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삶의 무늬다. 글을 쓸 때도 하고 싶은 말을 필터 없이 막 쏟아내거나 나를 더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타인의 마음을 가만히 짚어줄 수 있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 더 오랜 시간을 쓰고 싶다. 내 문장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베기보다, 그저 젖은 마음을 말려주는 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결국 내가 도달하고 싶은 시선의 끝은 ‘이해’가 아니라 ‘공감’이다. 세상을 향해 쏟아내던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고, 낮게 흐르는 저녁 볕처럼 주변을 고르게 비추는 시선을 가질 때 내 삶의 풍경도 비로소 평온해짐을 느낀다. 나는 오늘 어떤 눈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보았는가. 누군가의 결점을 파고드는 비정한 시선은 아니었나. 최근 기독교에 대한 아픈 영역의 글을 쓰면서 내내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과연 난 사랑의 마음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는가.
거울 속의 나는 이제 예전처럼 명민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초점 흐린 그 눈동자 안에 예전보다 훨씬 더 사람의 얼굴을 담으려 노력하는 지금의 내가, 나는 조금 더 마음에 든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경제적 손실이나 사회적 수치로 바꾸지 않고, 오직 한 인간의 존엄으로 대접하려고 애써보자는 시선. 이것이 내가 오십 년 세월을 통과하며 얻은 가장 아픈, 그러나 가장 따뜻한 수확이다. 어쩌면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고 멀기만 한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바라던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그 마음과 시선도 한 단계 한 단계 더 성장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