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이 듦이 왜 좋은가 - 1

by 강훈

50대 3년차다. 거울 앞에 서면 예전보다 조금 더 낯선 사내가 나를 응원하듯, 혹은 관조하듯 바라본다. 거뭇하던 머리카락 사이에 내려앉은 부쩍 늘어난 흰 빛은 단순히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짊어지고 온 수많은 이름의 무게라는 생각이 든다. 목사로, 셰프로, 새롭게 도전하는 작가로,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은 참으로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이 듦이란 무언가를 더 채워 넣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짓누르던 불필요한 겹들을 하나둘 벗어던지는 용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오십 년 정도를 살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내가 가진 명함의 두께가 내 영혼의 깊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젊은 날의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참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내가 세운 기준이 세상에서 요구하는 성공 방정식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며 전전긍긍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수많은 겹을 껴입은 인형 같았다. 내면의 결핍을 감추기 위해 입었던 그 화려한 옷감들은 사실 나를 보호하기보다 숨 막히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기력은 예전 같지 않고, 기억은 가끔 길을 잃으며, 사회적 영향력은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 상실은 일종의 해방이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해방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오십 대가 되어 비로소 나는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의지로 숨 쉬기 시작했다. 옹졸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소모했던 에너지를 이제는 오롯이 나 자신을 보듬는 데 쓴다.


나이 듦의 우아함은 이 '단순함'에서 피어난다. 예전에는 없으면 큰일 날 것 같던 인맥이나 소유물들이 사실 내 삶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 과정은 지극히 인문학적인 성찰이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너무 많은 수식어를 붙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진짜 좋은 문장은 불필요한 형용사나 부사를 걷어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내 삶도 마찬가지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남은 '맨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처음엔 조금 시린 경험이었지만, 그 서늘한 진실 앞에 당당히 설 때 나는 비로소 주권적인 인간이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무도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오십 대의 나는 그 질주에서 기꺼이 내려오기로 했다.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던 낡은 감정들을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평온이 고이기 시작한다. 텅 빈 방에 빛이 더 잘 들듯, 비워진 마음에는 타인의 슬픔에 공명할 수 있는 온기가 머문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인 셈이다.


이제 나는 종종 아침에 거울을 보며 묻는다. "오늘은 또 어떤 무거운 겹을 벗어던질까?"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를 옥죄던 낡은 생각 하나,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겹겹이 쌓인 옷을 벗어 던져야 살갗에 닿는 바람의 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듯이, 삶의 무게를 덜어내야만 생의 생생한 기쁨이 손에 잡히기 마련이다. 진짜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며 움켜잡았던 여러 겹의 옷들이 사실 나를 보호해준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 착각에서 벗어나도 좋겠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불편한 옷들을 던지고 조금 가벼워진 어깨로 세상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이 듦이라는 자리에 나만의 고유한 향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