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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19. 2022

군복은 군바리에게만 특별하다

내가 보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

 요즘 군대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군대에 간 후 첫 휴가를 잊을 수 없다. 아마도 군대에 다녀온 모든 남자라면 첫 휴가는 정말 멋진 순간이다. 그런 특별함을 더 특별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첫 휴가를 위해서 아껴둔 군복과 군화를 꺼내는 것이다. 일명 "초 A급"을 꺼낸다. 한 번도 입지 않은, 말 그대로 새것이다. 그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제 아무리 선임병이라도, 심지어 장교, 간부라도, 그 어느 누구라도 그건 못 건든다(물론 정말 간혹 그걸 뺏어가는 수준 이하들도 있긴 하다.) 


 휴가 전날이 되면 선임병들이 그 군복을 다림질해 준다. 옷매가 살아나도록 빳빳하게 줄을 잡고 군화도 번쩍번쩍 닦아 준다. 정말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최고의 군복으로 잘 차려입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다(부대가 강원도에 있다면 동서울 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로 버스가 갔다. 요즘은 강남으로도 간다.) 당연하게 군인들이 많다. 다들 휴가를 나온 모양이다. 여기저기 군복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눈에 딱 보인다. 군복도 눈에 딱 들어오고 이전에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던 영역들도 보인다. 바로 다림질로 각이 잘 잡힌 군복, 눈이 부실만큼 반짝거리는 군화는 정말 눈에 띄게 잘 보인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휴가는 이렇게 위력적이다. 뭔가 색다른 마크가 군복에 붙어 있으면 금세 알아보며 부러워한다. 특수부대만의 어떤 표시나 마크 같은 것이 군복 상의 가슴 쪽이나 팔뚝에 붙어 있으면 같은 군인이어도 뭔가 신기하다.

 '저 놈은 뭔가 좀 다른데?' 

 하지만 동시간에 함께 하고 있는 동서울 터미널에 있는 일반 대중들 - 이른바 민간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하게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제대로 차려입은 군인을 직접 봐도 별 관심이 없고, 심지어 유심히 뚫어지게 봐도 잘 모른다. 아니, 일단 뚫어지게 볼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냥 군바리"다. A급 군복인지 아닌지 관심도 없고 설령 들이대도 알아보지도 못한다. 어쩌면 나 좀 알아봐 달라고 그곳에서 소리친다고 해도 미친놈 취급하며 관심도 안 보일 거다. 그 특별함이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는 아무런 특별함도 아니다. 그저 다들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집에 돌아가서 휴가 왔다고 뛰어 들어가면 어떻게 반응할까? 부모님들은 고생했다면서 연신 어깨와 등을 두들겨 줄 것이다. 격하게 포옹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군복을 칼 같이 잘 다렸다는 둥, 군화가 정말 번쩍거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말 군복 각이 살아있어서 손이 베이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남자답고 멋있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말이다.  


 집에서만 그럴까?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내가 군복 입은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집에 온 이후에 곧바로 군복을 벗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때가 타지 않도록 아껴둔 A급 군복인데, 그렇게 하루 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다림질을 했던 군복인데, 눈이 부실 정도로 밤새 닦은 군화인데 곧바로 다 벗어서 내팽개쳐 둔다. 다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에 다림질을 하고 구두를 반짝거리게 닦아서 복귀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다.  왜 곧바로 군복을 벗어던질까? 군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아니 정확하게는 군바리처럼 취급받기 싫어서다. 그래서 벗어던진 군복을 대신해서 청바지를 시작으로 민간인처럼 보일만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멋지게 경례 손을 올렸던 군용 모자도 벗어던지고 야구모자를 쓴다. 그러고 거울을 보면 뿌듯하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 하지만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듯하다. 내가 군바리이고 휴가 나와서 민간인처럼 보이려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것을 말이다. 군바리인데 군바리 아닌 척하는 내 모습을 모두 알아보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휴가 나와서 버스터미널에 있던 사람들이 날 모두 군바리로 볼까? 군복을 벗어던지고 사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진짜 정체를 눈치챌까? 그렇지 않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딱히 관심이 없다. 설령 관심이 있다 한들 그건 그들의 관심이지, 내가 그에 따라서 행동할 이유가 없다. 군복을 아끼고 잘 다려 입고, 군화를 반짝거리게 닦은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 자신을 위한 것일까? 휴가에 나와서 다시 일반인 복장을 하고 나가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 자신을 위한 것일까? 생각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행동이다. 실제로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설령 가지고 있는 군복 중에서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흙이 묻어 있는 군화를 신고 나온 들 그들은 관심 없다. 만약에라도 어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봤다 치자.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일주일 후에도 당신을 기억할리가 없다.
'지난주에 버스터미널에서 본 그 허름한 군복을 입은 군인이 생각난다. 불쌍해 보였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설령 그 사람이 일주일째 그렇게 기억한다고 치자. 일단 당신이 다시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한 달 이상이 되어도 당신을 기억할까? '지날 달에 버스터미널에서…. 블라블라..' 이런 사람이 있을까?

 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잔하고 왔는데, 다음날 지나가던 사람이 당신을 붙잡고, 

 "어제 00 술집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을 하고 술을 마신 휴가 나온 군인 맞죠?"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는 것도 쉽지 않다. 하물며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필요 이상으로 갖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 좋으면 되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눈높이에 내 모든 취향과 인생을 맡길 이유는 없다.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니까. 그러니 세상 어느 누가 당신에게 뭐라고 비난하든 말든 그건 상관없다. 내가 날 비난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니까. 군복을 휴가 때만 일회성으로 잘 차려입으면 어떤가? 나만 좋고 행복하면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아주 심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에 민감하다. 군복을 이야기했으니 그냥 옷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우리는 길을 가다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경우의 반응은 어떤가? 민망해하거나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꺄악~" 소리치면서 숨거나 도망가버리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난 왜 그런가 싶었다. 갑자기 경련이 일어났거나 뭔가 심각한 것을 보았거나 그 사람이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먼발치에서 발견하고 소리친 것이었다.  


 비단, 옷을 중심으로 한 겉으로 보이는 영역만 그럴까? 아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판단하든 상관없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으면 충분한 거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맞출 필요도 없고,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맞출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의 영역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한가? 사실 그것도 문장의 내용만 보자면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다른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존중도 없는데 누가 누굴 이해하고 존중하는가? 그래서 더더욱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유일하면서 제일 중요하다. 뭘 입든, 화장을 어떻게 하든, 내가 어떤 신발을 신든,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나에 대한 어떤 평판이 있는지가 삶을 지배한다면 당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자기 자신을 그런 조건들과 상관없이 사랑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입은 옷의 상태나 브랜드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브랜드나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당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찌나 프라다 구두를 신었다고 당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검정 고무신을 신는다고 당신이 별 볼일 없고 의미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에 반응한다. 문제는 당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반응하느냐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음을 바꿔보자.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정작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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