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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ug 23. 2022

똥이 항상 더러울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건 또 뭔 소리지? 똥이 항상 더럽냐고? 그럼 똥이 깨끗할 때도 있다는 건가?


 아주 꽤 오래전에 본 장면이 있다. 탤런트 최수종 씨가 했던 말이다. 엄청난 애처가로 알려진 최수종 씨는 그 행동과 발언에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공분을 샀고, 모든 여자들의 최고 남편상이 되었다. 그러던 최수종에게 아이가 생겼다. 예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예쁘세요?"

 그 질문에 최수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애가 똥을 싸잖아요.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똥도 너무 예쁜 거예요."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자기 자식인데 뭐.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걸로 밥도 비벼 먹겠더라고요."


 아마 이 대목에서 대부분 '우웩'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지만 똥을 그렇게 생각하다니 정말 특이하긴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최수종의 발언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지나치다'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이라서 그렇다. 내가 당사자라면, 그리고 내 아이가 당사자라면 그건 얘기가 달라진다.


 딸이 어렸을 적에 욕조에서 같이 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러다가 "아빠, 응가"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응가가 빠져나왔다. 나는 물에 빠지기 전에 손으로 덥석 받아냈다. 난 이때 나의 순발력에도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똥을 받아낸 것도 놀랐다. 그리고 제일 많이 놀란 것은 그 상황이 전혀 기분이 나쁘거나 괴롭거나 더러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와 옛날 에피소드로 종종 말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물론 여중생이 된 딸은 이제 그 말에 기겁하긴 한다. 


 우리는 이 개념에 대해서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다. 어떤 것을 대하는 자세와 의미부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을 잘 설명해주는 아주 잘 아는 이야기가 있다. 고사성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바로 그것이다. 원효대사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것이다.  


 원효대사가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위해 당(唐)나라로 유학을 가는 길에서 경험한 일이다. 날이 저물어 자야 할 곳을 찾던 중에 동굴을 하나 발견한다. 동굴에서 자다가 갈증이 생겨, 잠결에 물을 찾아 마셨는데 다음날 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무덤이었고, 잠결에 시원하고 맛있게 마셨던 물은 그 무덤의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그 사실에 원효대사는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 순간 원효대사는 크게 깨닫게 되고 당나라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시 고국으로 돌리게 된다. 같은 동굴인데 밤에는 포근한 잠자리였지만 낮에는 무서운 무덤이었고, 같은 물인데 밤에는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었지만 낮에는 해골에 고인 끔찍한 물이 된 셈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라는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를 크게 깨닫고 불법을 찾아 머나먼 당나라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통의 상황이나 불합리한 상황,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상황들이 나에게만 유독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들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서 삶의 성공과 실패가 달라진다. 삶의 성공은 무엇을 이루어내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이루어내는 것은 그저 성취일 뿐이다. 어떤 것을 얻고 이루어내는 성취가 반드시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성공은 원하지 않는 시간들과 상황들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지혜를 발견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뻔히 실패처럼 보이는 상황도 그 속에서 다른 차원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도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으로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일체유심조의 경험처럼 말이다.  


 세계 재벌 순위를 숫자적으로 나열해서 결정할 수는 있지만 세계 성공 순위는 그렇게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리고 당신이 성공 순위의 1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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