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기엔 나이 들었고, 클래식이 되기엔 어정쩡한 나이 그리고 도전
- 매일 새벽 4.30분에 일어나는 일이란
첫 글을 그렇게 올려두고, 하루 이틀 매일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어쨌든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서울에서는 새벽이 아니면 글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킵니다. 진짜 도전이 시작되었구나라고 느껴진 건 이 아침 알람 소리 때문이었어요. 아주 죽을 맛이더라고요. 같은 시간에 일어나 미리 정리해 둔 글감으로 한 글자씩 써내려 가다 보면 어떻게든 글이 한 편 뚝딱 쓰입니다. 뚝딱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몇 시간을 공들여 내어놓은 글이 대부분이지요. 부족함은 항상 보여요. 그래서 공들여 써 놓은 글 앞에서 좌절이라는 걸 매 번 하게 됩니다. 다시 새 아침 알람 소리가 여지없이 울리면, 저는 그 좌절을 만나러 다시 하얀 백지 앞에 앉아야 하지요. 아... 이런 게 도전이구나 그 씁쓸한 맛을 보게 됩니다.
알람 소리는 그냥 오지 않아요. 언제나 장대한 유혹의 산맥을 제 앞에 펼쳐 준답니다. 오늘 하루 그냥 넘기고 좀 더 잘까? 하루쯤 잠을 더 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작된 유혹을 이기지 못해 늦잠을 자버린 날들도 꽤 있습니다. 아침 글쓰기를 그렇게 넘겨 버린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밤 11시 59분까지는 쓰는 과제가 계속 남아 있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선택을 해야 하죠. 미루느냐, 미리 하느냐.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 갈등의 유혹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루는 게 버릇이었던 일상에 이건 또 다른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래도 마흔이나 되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지 않니. 그런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 앉아 다시 시작합니다. 마음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너무도 좋아해요. 그런 마음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탈바꿈하는 도전은 지금도 지리하게 계속하는 중입니다.
- 글감은 매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그렇게 알람 소리와 유혹의 산을 넘어 쓰다 보면 글감 고갈이라는 걸림돌을 만나게 됩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써야 할 것만 같은 마음 때문에 소재가 눈에 띄지 않아요. 그러다 결국 너무도 사소한 이야기로 백지를 채우는 시간을 마주하다 보면 온통 낯 뜨거운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지요. 쓰는 일 중 가장 어려운 도전은 자유 주제로 백일을 쓰는 일이 아닐까 하며 불평도 아주 많이 했더랍니다.
소재 고갈의 도전을 어떻게 맞설까 궁리하다 보니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순간에 빛을 주기 시작이니까요. 쓰려면 무엇이라도 집어내어 의미를 붙여보고, 느껴봐야 쓸 수 있습니다. 점점 일상의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도 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말라가는 글감을 찾는 탐험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바쁜 일상 속 쓰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
매일 닥치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현실적인 고민은 쓰는 시간을 쉽사리 뒤로 밀어버리고 말아요. 사실 쓰는 시간을 확보하고 우선순위에 두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매일 써도 경제적인 현실이 해결되는 게 아니니 쓰는 시간은 쉽사리 뒤로 밀리게 됩니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이나 오지를 탐험하는 탐험가들 혹은 신기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어놓는 사업가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인생에 도전이라는 단어를 놓으려면, 먼 곳으로 가야 하고 생전 해보지 않은 거창한 활동을 해야만 이 단어를 쓸 수 있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지요. 이 백일을 시작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건 그냥 사소한 일탈이자 힘든 시간 나를 지켜낼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건조하고 현실적인 일상 속에 쓰는 일을 먼저 내어두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도전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마흔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들, 각자의 일상으로 너무 바쁘니까요.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책임을 이고 진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바쁜 일상 앞에 쓰는 시간을 내어 놓는 일이야말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일에 버금가는 커다란 결정과 굳은 의지를 필요로 합니다. 잠깐은 할 수 있지만, 매일 백일을 그렇게 한다는 건 정말 큰 도전이었지요.
- 백일을 의미
백일을 반복적으로 쓰다 보니 왜 사람들이 그 날을 크게 생각하고 축하하는지도 알았습니다. 매일 백일은 꼬박 해 내어야 비로소 그것을 삶으로 들여놓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경험하니 그렇습니다. 백일을 썼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일도, 글재주가 엄청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제 무언가 시작했구나 말할 수는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는 걸 경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일을 견뎌내고 "웅녀"가 되어, 매일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문장을 내어볼 수 있는 지금의 결과를 자축해 봅니다.
더불어, 그 시간에는 물리적으로 앉아 쓰는 시간뿐 아니라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걷던 모든 행위의 순간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커다란 움직임과 정성이 곱게 담겨 있지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내 안으로 들여놓는 일, 타성에 젖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몸부림, 미지의 세계인 쓰는 일을 거북이 같은 걸음으로 배워가며 굳어버린 고정관념이나 사유의 틀을 벗어나 보려 노력하는 이 발자국 속에서 백일의 의미도 읽습니다.
- 마흔과 글쓰기
마흔을 넘는 고개에는 어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기도 하고, 더 늦기 전에 꼭 무언가 시작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고, 시작을 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컸습니다. 주야장천 걷던 아침에 절실함과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절실함이 마흔이라면 무엇이든 해 볼만 하겠다 싶은 자신감이 들더군요. 마음속으로 품기만 하던 글쓰기를 절실함과 간절함의 마흔 길에 친구로 맞이했습니다.
연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 교수의 말이 떠오릅니다. 65세부터 90세까지는 삶의 열매 맺어 사회에 돌려주는 기간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신체적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적 노화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따끔한 그의 일침도 뒤따랐지요. 기억력을 운운할 때 아주 자주 나이 핑계를 대곤 하던 모습이 민망함으로 다가오네요. 책임감이 솟습니다.
백일의 목표점을 지났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를 제 삶으로 들여놓은 그것을 축하할 뿐이지요.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경험합니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거대한 아우라를 뚫고 들어가 보니 보석을 안고 사는 제가 보입니다. 반짝이는 일상은 언제나 우리 옆을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그 반짝임을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입니다. 이것이 쓰는 시간 동안 만난 마음의 눈빛이 보여준 도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이 눈빛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흔을 다시 생각합니다. 스물 청춘을 그리워하다 보니 청춘의 싱그러움만 안고 분주히 떠돌던 방황이 너무도 짙어요. 공들여 지나온 방황의 발자국을 마흔이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소중합니다.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에 이 모든 것을 담아 김형석 교수의 말처럼 삶의 열매를 맺는 날을 기다리는 일도 멋스럽다 느껴집니다. 더 낯선 것을 배우기 위한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올곧이 받아내어 심장을 고동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려고요. 마흔의 간절함과 절실함은 찬란한 아름다움이라고 아슬아슬 방황의 길을 걷는 이들과도 꼭 나누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