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 나아감

가을에 바라보는 글쓰기

by 김라희


스펙이라는 게 있지요.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최대한 많이 쌓아야 하는 스펙. 나이에 따라 이 스펙의 내용도 달라진다고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집 평수, 직업, 직급, 자산 정도 등 좀 더 현실적인 숫자와 위치에 집중하게 되죠. 그것을 쌓으려고 더 아등바등 노력하게 되고요. 변화의 바람은 좀 보여요. 물질적 기준에 개의치 않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도 실상 현실로 들어가 보면 아직 그런 선택은 소수에 지나지 않아요. 무엇이든 쌓아가는 일은 삶의 큰 부분이니까요.


요즘 또 다른 트렌드는 살림을 비워내는 일이더라고요. 여기저기서 버림을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죠.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얻고, 자신을 그 소비 안에 투영하기도 하죠. 얼마 전에 공간에 대한 유현준 교수의 짧은 강연을 시청했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한 가구당 가족수는 줄었지만 필요한 공간은 점점 늘어갔다고 해요. 그 늘어간 공간은 살림살이가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둘이 살아도 필요한 게 참 많습니다. 양문 냉장고, 오븐 딸린 사구 인덕션, 공기 청정기, 심지어 드레스룸까지 뭐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겠네요. 버림을 실천한 사람들이 얻는 혜택은 비워진 공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상의 새로움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쌓아본 경험은 있어도 비워 본 경험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흔을 살면서 계속 채워 넣느라 바쁘네요. 아직도 채워야 할 목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 일쑤니 까요. 요즘은 자꾸 집을 보게 됩니다. 누구는 어느 동네 몇 평에 살고 있고, 집안은 어떤 가구 브랜드로 채우고 있구나 하며 자꾸 보게 되지요. 자산은 어떻게 늘려가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해요. 요즘 유튜브나 출간되는 책을 보면 이것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듯싶어요. 젊은 층에서도 부동산과 주식으로 쏠리는 관심은 커져가고, 그것을 채우고 싶은 욕망은 끝없이 펼쳐져 보이니까요.





이러한 관심과 욕망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채울 수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이니까요. 비워본 경험도 딱히 없고, 채우고 싶은 일만 가득인 저에게 매일을 쓰면서 변화가 하나 일어났습니다. 쓰다 보니 쌓였던 추억과 기억을 비우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오늘은 쓰면서 경험한 비움과 나아감에 대한 행위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매일 쓰는 동안 과거를 참 많이 들추었습니다. 글감을 찾다 보니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대화와 수다로 그 과거를 나눈 시간은 있어도 이렇게 글로 남겨본 일은 처음이었지요. 대화로 과거를 이야기할 때는 나눠도 나눠도 자꾸 더 말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는데, 글로 써 두고 나니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랜 시간 매여 있던 과거의 순간을 뛰어넘고 싶다는 바람이 들어섭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추억을 담은 글을 쓰고, 다시 그 글을 읽다 보니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여기 이렇게 남겨두자'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속 여기저기 정신없이 쌓아 두기만 한 추억을 보기 좋게 정리해버린 듯 상쾌한 기분을 느낍니다.


문장이 되어 남은 과거는 언제든 들춰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부담 없이 마음의 공간을 비울 수 있습니다. 마흔 줄에 무엇이든 써보겠다고 시작을 해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이야기들이 저를 채우고 있더라고요. 어떤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의 삶을 괴롭히기도 하고, 그에 반해 너무 좋은 시절의 추억은 지금 일상을 덮어버려 소소한 행복을 자꾸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글을 쓰며 지난날을 사유하다 보면, 과거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그걸 통해 과거와 화해도 하고, 이해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과거를 쓰는 일이 참 흥미롭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위해 꼭 그만큼의 오래된 물건을 버리거나 나눔을 한다던 어느 연예인의 기사가 떠오릅니다. 공간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마음에도 분명 공간적인 한계가 있겠죠. 과거나 예전의 문제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오늘을 담을 자리는 그만큼 좁아질 거예요. 지금을 잘 담기 위해 과거를 비워내는 일, 오늘의 기쁨을 담아내기 위해 과거의 기쁨을 덜어내는 일, 글 쓰기는 그 일을 가장 아름답게 도와주는 행위라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비움을 찾다 보니 버림력이라는 단어가 눈에 보입니다. 비운만큼 성장한다는 의미라고 해요. 책도 많이 읽고, 강연도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그 안에서도 비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경험합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나 이야기들은 내적으로 소화되어 밖으로 다시 나와야 하지요.


고미숙 작가는 부디 읽어라! 그리고 읽었으면 써라!라고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통해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채우기만 하면 반드시 부대낌이 온다는 생태적 이치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요. 비우기 위해 쓰는 행위가 가져오는 이로움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과거의 나를 비우자고 시작한 글 쓰기는 현재와 과거를 다시 연결시켜 새로운 자아를 찾게 도와주고, 과거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주며, 지금에 더 집중할 수 있게도 합니다. 또 마구잡이로 읽으며 채우기만 하다 걸린 내면의 소화불량은 쓰는 행위를 통해 비움의 방법, 사유의 방법을 배우며 유연한 내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으로 풀리게 됩니다.


이처럼 글 쓰기를 통해 마음의 비움을 행하다 보면, 새로운 마음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깨끗이 비워진 공간을 바라보며 새로운 일상을 꾸리고 싶은 마음처럼 마흔의 마음에도 상쾌한 가벼움을 갖게 되지요. 쓰기를 통한 비움과 나아감의 이치, 새 마음과 그 가벼움을 더 많이, 더 멀리 알리고 싶네요. 깊은 가을을 걷다 보니 오늘은 비움을 말하고 싶어 졌나 봅니다. 말이 좀 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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