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이 벌써 24일 화요일이다. 8월은 원래 더 바쁘게 지내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바쁘지 않아 다행인 듯 하지만 괜한 아쉬움이 좀 남는다. 친구들이 찍어 놓은 서울의 산등성이와 하늘을 감상하느라 잠시 향수에 젖었고, 평양냉면을 한 그릇도 먹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낼 것 같은 위기감에 눈동자를 흔들며 아쉬움에 잠겨야만 했다. 서울만 그리워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릴 수 없어 런던을 더 가까이 담아 두기로 마음먹었다. 글로 남겨 두고 싶어 참고할만한 책들을 추려 읽기 시작했다. 관계는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도시와 나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걸 이곳, 런던에서 몸으로 느끼고 배운다. 헌데 중요한 건 난 런던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왜일까?
2.
카톡이 연달아 울린다. 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자도 톡도 전화로 이야기를 길게 나누는 게 재밌는 놀이 같았는데, 요즘에는 짧고 명료한 게 좋다, 유선상으로는.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을 만날 때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 상대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공사가 바쁘지 않은 이상. 대화의 즐거움 또한 몰입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상대를 위한 배려라는 마음에서다. 몰입할만한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그립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해타산이 섞인 사이가 아니면 연락을 잘 주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그래서 자주 사람들에게 난 무엇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3.
경이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의 소녀시절이 잔뜩 묻어나는 장소들을 지나오며, 내가 보고 싶어 졌다고 톡을 보내왔다. 사랑하는 경,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다. 우리는 서로 친한 친구의 무리가 달랐고, 교집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짝사랑, 그놈의 짝사랑이 우리를 지금껏 친구 사이로 이어주었다. 우연히 짝꿍이 되어 우연처럼 서로 짝사랑하고 있던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급격히 서로를 궁금해하고,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경은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눈도 크고 이쁜 참 발랄한 아이였다. 중학교 때 내 모습을 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많이 웃고, 키가 컸고, 생각이 많았던 아이라고 어렴풋하게 말할 수는 있다. 나도 재작년 서울에 있는 동안 혼자 추억 도보여행을 했다고 그리고 그 도보 여행의 끝에 생각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너였다고 말했다.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통한다. 그래서 오랜 친구가 좋은가 보다. 나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따뜻한 감정이라는 걸 다시 경험한다. 점심 먹을 시간 즈음 나눈 경과의 대화 덕분에 오후 내내 쏟아지던 햇살이 더욱 따사로웠다.
4.
카불 공항의 아비규환 사진과 영상이 머릿속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데도 매달려 있는 사람들, 군용기에 몸을 어떻게든 실으려 악을 쓰는 사람들, 버려진 갓난 아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민간인들이 겪은 전쟁의 고통을 듣기만 했지, 흑백 사진으로 보기만 했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지구 어느 한편에서 갖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 목숨 하나 건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탈레반 외교 통신과 인터뷰하는 비비씨 기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인권, 특히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질문이 주였다. 다른 이념, 가치관, 종교 그리고 윤리 도덕성을 갖은 단체와 사람들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가치관, 도덕성 등에 따라 그 삶의 방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재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던 곳을 외부 압력을 피해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것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알아보려 마음을 기울여 보기도 했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다.
5.
그렇게 저렇게 8월이 지나간다. 시간을 쓰며 살아가는 게 사람이라는 걸, 삶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