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하길 바래요

무기력을 헤쳐가는 중인 우리들에게

by 김라희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어 어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며칠 전 친구에게 회사 생활이 힘들다는 카톡을 받았다. 한 번 시작한 일에 그야말로 올인하는 열정적인 그녀인데 요즘 부쩍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번에도 뭐라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을 찾기가 어려워 그저 듣고만 있다. 그녀는 힘들게 슬럼프에도 빠졌다가 다시 뚫고 나오는 듯 또 열심히 살아가고, 그러다 다시 슬럼프 비슷한 게 찾아오면, 그녀만의 방법을 찾아 잘 헤쳐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 "업 앤 다운" 때문에 어려운 시간의 근본을 찾아 나설 힘조차 없을 만큼 나약해진 듯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어느 시절의 나와 너무도 비슷했고, 또 많은 사람들과도 닮아 있다. 그렇기에 다시 잘 헤쳐가겠지 하며, 기다리기만 하는 게 맞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무기력이나, 번아웃에 물들어 버린 몸과 마음을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한 때 아주 심각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무기력이었구나..."하고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게 천근만근이고, 세상만사 다 귀찮고, 끼니 찾아 먹는 일도 어려워 간편식 옆에 두고 그저 침대 속에서 며칠을, 몇 달을 누워 텔레비전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적인 공간을 가깝게 들여다볼 사람이 없었기에 누구도 내가 그런 무기력증에 심하게 걸렸을 거란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활기찬 모습으로 동료들과 일했고, 매니저로 한 팀을 이끌며 일상을 잘 꾸려가고 있는 듯 보였다. 대략 3년이다. 집에서는 TV만 보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연애를 해도 시큰둥하게 별다른 감흥 없었고, 나를 꾸미는 일도, 맛있는 걸 먹는 일도 다 시큰둥했다. 그저 숨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 생각했다. 회사가 워낙 바쁘고,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다 보니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잘 쉬고 나면 나아지겠지라는 수동적 기대만 품고 침대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결국 그 무기력은 엄청난 아토피를 동반했고, 심하게 번져가는 아토피를 마주하고 나서야 일상 어느 곳엔가 문제가 있다고 눈치채기 시작했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 지금의 짝꿍은 아토피 마저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날 보다 못해 천둥같이 소리치며, 회사를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변해가던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 탓을 하며 그만두라고 말하는 그가 그냥 너무 미웠다. 그는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너를 이렇게 "helpless" 무력하게 만드는지 어서 찾아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심리학에서 무기력은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또는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이라 정의한다. 자발성과 의욕을 갖는가, 갖지 않는가가 무기력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대학을 졸업하며, 기대와는 달랐던 현실에 어쩔 수 없이 가고 싶지 않은 회사를 들어갔다. 런던 생활을 고집했기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그건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 아니라 여겼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실적 보고, 기획, 마케팅, 업무 폭탄 돌리기 등등 그냥 일일 뿐인 일들이 매일을 채워갔다. 그 일상에 유일한 안식처는 텔레비전이었다. 그리운 한국 생활을 TV와 함께 달랬고, 사람한테 시달려 쌓인 마음의 쓰레기도 TV와 함께 씻어 버렸다. 꿈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가 무기력을 가져왔고, 무기력을 안고 살기 위해 TV를 봤다. 그렇게 스스로 악순환을 만들어 버렸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무기력이 남긴 유일한 선물, 늘어난 통장 잔고 덕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아토피가 얼굴까지 올라와 눈가를 덮어버렸다.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더 가까웠다. 식단표를 만들어 식사가 끝나고 나면, 먹은 것을 적었다. 운동을 하라고 하니 시간을 정해두고 나가 걸었다. 5분 걷다 들어와 다시 TV를 봤고, 10분을 걸었고, 15분을 걷다 들어와 TV를 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 시간은 늘고, TV 보는 시간은 줄어갔다. 혈액 검사를 했는데 비타민 D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낮다고 했다. 영국 와서 처음으로 비타민 D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빼곡히 적힌 식단, 걸음수가 늘어갈수록 아토피는 사라져 갔다. 살도 빠지고 얼굴에 다시 혈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국 중등 과정인 GCSE 영어를 가르쳐 보면 어떻겠냐는 지인의 북돋음 덕분이었다. 서점에 가 책을 읽어보고, 학과정을 찾아보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잊고 있었지만, 내 첫 번째 꿈은 학생들이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설강화처럼 일상에도 한 올 한 올 활기가 차 오르기 시작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 학기가 지나며 영어가 더 편해졌다며 환하게 웃는 아이, 시험 성적이 좋아져 감사하다는 엄마들의 얼굴을 만나며 무기력은 사라져 갔다.


런던 튜브(지하철)를 빠삭하게 알고, 시내 좁은 골목을 편안히 누비며 다닐 수 있는 건 다 그 무기력을 떨쳐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력 탓이다. 지금도 그 시절이 남긴 학습된 무기력이 몸 어딘가 한 구석에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친구의 문자를 보고, 무기력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친구와 나눌 수 있는 말들을 찾아본다. 그렇게 나도 함께 앞으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둔다.


무기력을 떨쳐 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도와주려는 사람도 밀어내고야 마는 게 무기력이다. 이렇게 쓰고 나서야 그 시간의 나를 이해해 본다. 지금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혼자 어딘가에서 무기력에 눌려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라도 만나본다. 어떻게든 다시 어떻게든 작은 삶의 의미를 되찾아 자발적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 안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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