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글쓰기

by 김라희

요즘 아침마다 이메일 여는 마음에 밝은 기운이 들어선다. 아무런 기대없이 신청한 에세이 구독 서비스 덕분이다. 매 주 다른 주제로 다섯 명의 작가가 쓴 글이 매일 하나씩 배달되는데, 이것도 이제 두 개의 주제만 남았다고 하니 시간의 빠름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다섯 작가의 글은 별스럽지 않고, 무난하지만 각자의 시선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궁금하다. 지난 몇 주간 배달된 글을 읽다보니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글을 쓰던 백일 글쓰기 시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벌써 횟수로 2년 전이니 '시간' 너를 어쩌면 좋을까.)


당시 글쓰기를 리드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글정이라는게 무섭습니다." 글정... 그 때까지만해도 들어본 적 없고, 느껴볼 기회도 없던 이 말을 마주하고 '밥정은 알아도 글정은 또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을 품었다. 백일을 꼬박 다 쓰고 몸으로 배운 사실이 밥정만큼 무서운게 글정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이야기를 매일 들려주던 사람들의 글이 친숙해지다 못해 하루, 이틀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지, 무슨 일로 그리 바쁜지, 마음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저런 염려를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2년의 시간이 흘러도 함께 글 쓰던 글친구들의 행보가 궁금해질 때가 있고,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는 글정이라는 단어를 그 누구보다 잘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그저 가볍고 신이났던 것 같다. 그건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각자의 경험을 내가 쓴 글을 통해 나누는 활동을 하다보니 그 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지기만 했다. 초심자의 무대포 마음이랄까? '무엇이라도 써 내면 되는 거잖아!' 하며 토마토도, 브로콜리도, 마늘도 데려다 글을 지었다. 지금도 그 때 글을 읽다보면 무슨 용기로 이런 글을 내어 놓았을까?하는 마음이다. 이제 횟수로 3년차 (벌써!), 이상한 블랙홀이 생겼다. 이 블핵홀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더 잘 쓰고만 싶고, 생각을 내어 놓는 일이니 책임감도 깊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는 성에 차는 글이 나올리 만무하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횟수보다 남몰래 저장된 쓰다 만 글들만 수북히 쌓인다.


매일 배달되는 글을 읽으며, 블랙홀이 무겁게 매달린 추가 마음 속 깊이 대롱거리고 있음이 느꼈다. '글 쓰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하며, 추 하나를 끊어낸다. 백지를 마주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쓰는 일만큼 대단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책임감의 무거운 추 대신 연결의 아름다움이라는 깃털을 얹어본다. 오롯이 나와 마주한 시간, 내면으로 들어가 세상으로 뛰쳐 나올 수 밖에 없는 말을 고르고 골라 내어 놓는 일이 아름답다. 글쓰기는 내면으로 가는 통로이자, 그 내면의 몰입을 밖으로 내어놓는 용기다. 바람을 타고 여행하듯 내어놓은 글은 어디로든 날아가 타인과 소통한다. 이 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순간이 탄생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향한 부지런한 사랑이 타인과 연결되는 시간. 가벼워진다.


서울은 설 연휴이고, 런던은 여느날과 다르지 않다. 그저 바람 많이 부는 월요일일 뿐. 지금도 블랙홀에 빠진 듯 글 쓰는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안다. 백일 글쓰기를 마치고 컴퓨터 자판기를 변경했다. 손가락 힘이 너무 센 건지, 글정이 듬뿍 든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글길을 기다리는 마음이 강했던 건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건 아직은 브런치에만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오늘도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이렇게 어디선가 타인에게 글을 배달하며, 자신의 삶을 가꾸는 이들이 있기에 블랙홀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가벼워져라,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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