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공모전이 남긴 것

by 김라희

얼마 만에 느껴본 설레임이야! 어린이 날을 손꼽느라 흐르는 시간이 어찌나 지루하던지, 역시 기다림은 쉬운 게 아니구나 다시 말한다. 다 큰 어른이 어린이 날을 이토록 애타게 기다릴 이유는 뭘까? 나에겐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혹은 미대 다니는 친구들에게서나 들어 봄직한 단어인 공모전을 어쩌다 참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어쩌다 참여한 에세이 공모전 당선자 발표날이 바로 어린이 날이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마감일을 닷새 앞두고 발견한 공모전 광고를 읽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부랴부랴 에세이 한 편을 써내기는 했지만 아쉬움만 가득한 미완성 같은 완성작이라 느껴졌기에 제출하는데 더 큰 용기가 필요했고, 응모를 해도 이건 평생 나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


헌데, 온라인 공모전에 참여하려면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해외 거주자에게 너무 복잡한 그 인증 과정, 마감 시간의 압박 때문에 해당 웹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못한 채 서울에 있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느라 마음이 급했다. 결국 비밀로 남겨 두려던 공모전 참가 사실을 엄마께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내용이야? 제목은 뭐니? 상금은 또 얼마?" 생각지도 않은 딸의 공모전 참가 사실이 재미있으신지 웃음기 머금은 질문을 쏟아 내신다. "아이, 그냥 가벼운 거야. 글 쓰기 시작했으니, 뭐라도 동기가 될 수 있는 걸 찾아봐야지 싶었는데, 광고가 눈에 보이더라고. 뭐... 참가하는데 의의! 그런 거야~."라며 최대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얼버무리며 넘겼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니었다. 발표날이 다가올수록 '어머, 설마 나 일등 하면 어떡하지?', '상금 받으면 뭐하지? 진짜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설레발이 일상의 빈틈을 채우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의 끝, 드디어 어린이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꺼풀이 채 다 떼어지기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느낌 좋은데... 나 일등 하면 어떡하냐!!!" 실없이 중얼거리며 해당 웹사이트의 당선자 리스트를 확인했다. '에이, 뭐야... 없잖아... 내 이름...' '흠... 그래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자고 했으니 거기에 만족하자...' 그런데 어쭙잖던 설레발 때문이었는지 마음 어느 한편에 실망감이 들어섰다. "그렇지, 아직 갈 길이 멀지..." 하며, 얼른 그 마음을 걷어 버렸다. 훌훌 털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려 앉았는데 불끈 솟아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아니 왜 아니었을까? 당선된 사람들은 어떤 글을 내어놓았기에?"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내 글과 빗대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툭 던져졌다.


글 쓰는 일은 일기 쓰고, 편지 쓰며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와 인사를, 나에게는 기록을 남기는 행위 정도였다. 작년 여름에서 가을을 넘는 시간 동안 매일 글을 쓰며 느낀 글쓰기의 깊은 즐거움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후로 이렇게 브런치까지 와서 글쓰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언젠가 나도 출간하고, 강연도 하며 북토크도 다닐 수 있겠지? 하는 꿈을 남몰래 그려보는 재미까지 누리고 있다. 던져진 고민을 이어가려 책상 앞에 앉아 "작가 되기"를 검색하다 평소 좋아하던 정지우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그는 작가는 우선 글을 써야 하고, 공식적인 지면에 글을 실어야 하며, 작가라 불릴만한 위치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작가가 되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십여 분간 이어갔다.


그는 영상 시작 무렵, 작가가 되고 싶다면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꼭 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그려보았지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며칠을 고민하며 명확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작가들의 말을 찾아 듣고, 책 속의 문장을 뒤척여 보기도 하고, 브런치를 시작할 때 마음 가짐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 프로필에 적어 둔 "작고 가득한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은 것들이 간직하고 있는 꽉 찬 이야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좋아 오래전부터 다이어리 앞에 적어둔 문구이기도 하다. 매일 같은 날처럼 흐르는 일상 속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 하나라도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도 그곳에는 담겨 있었다.


삶의 보물은 분명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작은 것들 속에 꽁꽁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엉켜버린 듯한 시간 속에도 반짝이는 무언가는 반드시 숨어 있다는 믿음도 들었다. 손 끝을 타고 문장이 나오는 순간이면, 삶이 숨겨 둔 보물이 가득한 비밀의 숲을 걷는 청량하고 눈부신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다. 또 글을 쓰며 시간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따르다 보면, 우리의 곁을 스치고 가는 작은 것들 속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가 들리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자꾸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동력이고, 더 많은 사람과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즐거움이다. 결국 답을 찾은 듯싶다. 온갖 감각과 마음을 열어 지나치기 쉬운 작고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누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렇게 돌아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답이 있었다. 프로필에 걸어 둔 "작고 가득한 것을 담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답을 찾아 멀리멀리 헤매었는데, 아직 듣지도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살아가는데 필요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애 첫 공모전을 통해 오랜만에 느껴 본 설레는 기대감과 설레발의 짜릿함을 선물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쓰는 사람이 꼭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고 쓰지 않았던가, 정성을 다하고, 생각에 게으르지만 않다면. 앞으로도 쓰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전은 무엇이든 계속 이어진다. 기쁘게 반짝이며!




keyword